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Jan 24. 2022

기쁘지 않은 날에 옮기는 기쁨의 글

2021년 1월 16일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열어야 했다. 문에게는 열리는 것이 맞은 바. 다시 닫는 것은 연 사람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었다. 날이 추우니 어서 들어와 몸을 녹이는 편이 훨씬 행복과의 거리를 좁힐 따름이었다. 일거에 맞이한 따스함과 고요는 그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과 난로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나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어주는 것으로 분담을 끝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정말이지 그 어떤 나날보다.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이 얼어붙은 이유가 차라리 추운 날씨 탓이었으면 싶다. 부유하던 빙하는 제자리에 멈췄고 불현듯 이 얼어붙은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무릎 꿇고 두 손을 위태로이 지탱하며 떠내려가던 이 발판도 주위의 냉각에는 평범한 한기를 가진 얼음으로 변할 뿐이구나. 내가 올라탔기에 특별했던 곳. 파편 위에 있음은 거대한 집합에서 오는 힘의 논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손끝을 떨게 하는 차가움을 가진 소금물은 두려움을 주었으나 나의 자유로운 격리 행위를 보장해주는 펜스였다.

그랬기에 적어도, 적어도 나의 행동반경에 대해서는 예측하고 책임질 준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를 길게, 또 깊게. 그렇게 되었다.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은 지루할 수밖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나. 하지만 뜬금없이 가져온 너의 냉동실에 있던 새우, 함께 사 온 올리브유는 마음에 담백한 사실을 꾹 눌러 적었다. 팔짱을 풀고 행복을 만끽하세요.

보름달이 유독 밝아 창을 한가득 밝게 비춘 날. 다시 모습을 드러내 위협적인 무언가로 변했다. 번뜩이는 안광에 모습을 들킨 나에게는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방법 외에는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는 것이 여태까지의 견해였다. 도망치는 나의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망가. 그래 그렇게 언제까지고 도망쳐라. 멀리. 멀리. 더 멀리.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영하 10도의 새벽 공기가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노릇인가. 나는 하나의 존재이나 견해는 여러 곳에서 날 응시한다. 삐뚤빼뚤한 삶의 곡선을 따라 그 굽은 선의 곳곳에서. 어떤 기준점을 저 천장에 붙여 달아 두고 어떠한 기준은 내 발 밑에 지그시 깔아 놓았다. 지하실과 2층에서는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렇지.

무, 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떨어뜨린 물감은 한 방울로부터 벗어나 다시 가시적 투명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유독한 무언가에 도달해야 했다. 나의 삶이 더 이상 식수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도 성취는 내가 천장에 달아놓은 행위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해의 중론은 이렇다. 나를 비롯한 이들이 도망치지 않게 하려는 행위 전반이 삶의 태도를 꿰찼으며 첨예라는 단어에서 파급이라는 말로 옮겨간 마음이 많은 애정을 견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는 것.

잠실대교를 지나는데 한강이 얼어있다. 바다도 얼어붙는 마당에 한강이 얼지 않을 리가 없다. 돌아갈 곳이 있음에 얼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얼어버린 펜스를 길로 삼아 여기저기 둘러볼 기회가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남의 빙하를 구경하는 통에 의외로 생각은 녹았고 툭툭 털어내니 오래 깔렸던 러그처럼 놀라울 정도의 오염이 드러났다. 언젠가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처음 심포 물레를 사용했을 때 민감한 발판의 감도에 깜짝 놀랐다. 당시에 금세 적응했지만 예민하고 강력한 도구는 뻑뻑한 학교 인버터 물레를 차는 학기 내내 계속 떠올랐다.

나의 삶에는 언제나, 실재하나 보이지 않아 망각하는 것과 기억으로만 존재하지만 각인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떤 기호는 금세 잊혔으나 러시의 카라카스와 카마는 내가 아닌 내가 석판에 끌로 적었다.

낮밤이 바뀌어 괴로워하는 통에 문득 10CM 노래가 가장 어두운 새벽의 이불을 걷고 자판과 손 끝을 이어주었다. 종합적인 행복의 총량이 채워진 탓에 컵을 조금만 기울여도 보이던 계량컵의 밑바닥의 글귀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나에게 하나도 도움이 될 수 없었고, 글이 중구난방으로 쓰였고. 나는 어렴풋한 이유를 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대충 찾아도 행복이 있던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