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크리스마스
스물다섯, 예쁜 나이라더라. 과정은 추하고 극성맞았지만 아름다운 부분을 찾으라면 못 찾을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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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성경의 그에게 쏟는 믿음과는 별개로.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버텨낸 시간이 의미를 내포한 말을 뱉게 만들었다. 의뭉스러운 선물이 불러온 행복이었지만 안경점에서 도수를 맞출 때 쓰는 바보 안경처럼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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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이 되기 전에 미리 감상을 수놓으려 몇 자 끄적대는 지금 옆에 누운 너처럼. 필요하다면 밖에서 차가워진 손을 녹여도 좋아. 꽃을 피우는 절기에 꽁꽁 얼었던 나. 이제는 온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나? 사계절을 또 아이러니함으로 살았다. 의뭉이 온기가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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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장을 본 후 집에 돌아와 후다닥 해먹은 식사처럼. 정신을 쏙 빼놓고 돌파한 1년. 떠올려보면 작년 크리스마스, 그때 난 얼어붙기 시작했다. 딸기 타르트에 꽂은 초를 불며 무언가를 약속했더랬지. 쥐었던 손에 부패의 흔적이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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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딸기를 얹은 디저트가 함께한 성탄 절기의 밤. 후회가 역한 작년과는 달리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부드럽게 응원한다. 시럽 발린 딸기는 말해주었다. 하지만 너는 일 년 사이 꽤 도약했다는 것 잊지 마! 빨강과 초록, 크리스마스의 색을 간직한 딸기에게 받는 위로가 썩 나쁘지 않다. 부쩍 겨울의 과일을 사랑하게 된 이번 1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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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개의 하루. 가장 버텨내기 힘들었던 정오 이후의 시간들. 잿더미를 갈무리해보려 해. 툭툭 걸리는 일이, 눈에 밟히고 손에 든 갈퀴에 걸려든다. 해결되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내가 떠난 자리에서 누가 죽던 말던. 생각해봐야 정신만 아득 해질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얼핏 스친 돌무덤 위 나무로 엮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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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복제는 표출하는 모든 곳에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뚫어야지. 깨고 나가야지. 언제까지고 양수 속에 몸을 담그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코로, 내 입으로 폐에 찬 공기를 담아야지. 세상에서의 첫 호흡으로 인한 충격, 직립과 보행을 위해 꿇은 무릎은 잊힌다. 상흔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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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당장 내일이라도. 어차피 볼 것이고 어차피 들을 것이다. 어차피 보일 것이고 어차피 들릴 것이다. 나에게 영속성이란 그런 것이니까. 영원한 사이클. 돌고 도는 모습만 보고 소모적이라 할까 봐 염려스럽고 싫어서 꼭 새끼손가락을 건다.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니까, 아닌가? 요새 농담 삼아 말하는 양자의 세계에서는 깨라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약속은 지켜질 것이고 행위 전체를 고집이나 아집이라고 치환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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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행복이 충족된 날, 예상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아 얌전히 악기를 들어 올린 날. 나는 가운데 서서 나의 머릿속에 비가시적 영속의 이미지를 허공에 그리면 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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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짓을 끝으로 가시적으로 변한 영속과 관계가 있는 이들만 불러 모아 평의회를 가졌다. 합치된 의견. 행복이다. 마치 지류에 출력된 모든 색이 내가 모니터로 본 것과 같았다. 알지 않나, 정확한 실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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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흥미로운 글. 해외 출장이 잦은 레이서들이 고안한 시차를 극복하는 법. 굶는 것이다. 가야 하는 나라와 장소에서의 아침식사 전까지. 그렇게 지쳐 곯아떨어진 후 그곳의 아침을 먹고 나면 신기하게 적응되는 시차. 채우려면 비우고 얻으려면 버려야지. 만조를 끝내고 결국 공백. 가득함의 가능성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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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배스킨라빈스 알바생이 아이스크림을 정말 잘 담더라. 세 가지 맛 파인트를 벤츠 삼각별 모양으로 꽉꽉 채워서. 예쁘게 잘 눌러 담아주니 뭔가 내가 그 아이스크림 컵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