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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22. 2022

썩질 않아서 파묘 후 마음을 꺼내 불살라야 했다

2020년 12월 16일

#2

나의 일생을 통틀며 지옥이 순간의 틈을 이용해 어서 오라며 환영을 표하듯이 구원도 비슷한 수순으로 오고 있었다. 긴 시간을 깨뜨리는 강렬함으로 추락과 구원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딴생각을 하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일이 있던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에선 처음인 것만 같다. 그것이 하필이면 오늘이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은가 재고해보게 되는 어떤 날의 다음 날. 다시 환승해야하는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지금 머리뼈 안에 차 있는 것은 여전히 관념인가 아니면 실증 완료된 개인적 경험이 아직 체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인가. 나는 내 머리 언저리에 어서 달라붙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영하의 날씨에 다시 한 정거장을 뒤로 걸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도 흥미롭고 이질적인 날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 꿈만 같다. 그런 의미가 아닌 내가 알던 세상이 엎어져 처음으로 그 이면을 보인 느낌이었다. 곰이라는 글자가 문이라는 글자로 보이는 것처럼 읽을 수는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알 던 세상과 뒤집혀버린 세상이 이어지는 날.


어떤 너희는 내가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채 쓰는 글을 좋아한다. 혹은 열 손가락이 아닌 일곱 개나 여덟 개쯤 있을 때 쓰는 글을 좋아한다. 신비로운 것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위태로움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막대 위의 접시처럼 위태로움을 자각했으나 평소처럼 흘러가게 두는 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너는 바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네가 기껏해야 알아본 것은 예전처럼 마르지 않았다는 것과 더 이상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도리어 기쁜 일들이 있다. 넌 정말 똑같다.라는 말을 들어도 달가운 상대가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의 그 말이 입술 끝에 달려있으면 했다.


열려있지만 닫혀있다. 지나가고 있지만 멈춰있다. 걸러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 울컥하고 토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차례에 모조리 들어갈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불안으로부터 나의 뇌가 쪼글아들어 머리통 곳곳에 부딪히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답안지를 구비해둔 것도 아닌데 네가 알아서 답안지를 만들어 빠짐없이 답을 기입했다. 모조리 내가 원하는 말들로 채워진 편지도 아니고 시험도 아니었던 그것이 내가 너에게 전했던 세 개의 점이 모여 만든 삼각형의 모양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불평할 수 없다. 이것은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고통이라고 느낀 적 없기 때문에.


평범하게 여기는 일을 삶의 출입구 바로 앞에 진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하다는 공공의 말로 처리하기엔 사안이 심히 중대하다. 리셉션을 매일 열어도 부족하도록. 모셔오는 자동차에 온열시트가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할 정도의 정성으로.


선물에서 너의 목도리로 옮겨가 나는 향, 조 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향수. 감회가 새롭다. 단어 그대로.


예쁜 추억, 촉촉한 글. 내 입과 손에서는 나오지 않는 단어를 끝으로 셔터가 닫혔다. 꽤 많은 빛이 지나왔구나, 사진이 참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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