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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Mar 21. 2022

소확행으로 삶을 살아가기엔 그릇의 크기가 크다

2021년 12월 5일

나의 연말. 2021년.


유통기한은 11개월 정도. 이건 다쳐가면서 알게 된 것이니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틀려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연말에 연하장을 보낸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연하장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들이나, 혹은 지금 미국에 있는 고모의 가족이 보낸 해피 뉴 이어.라고 쓰인 가족사진을 보며 연하장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배움이 있었다.


가까운 연말들을 기억해본다. 연말에는 당시의 가까운 이. 당시의, 가까운 이. 지금은 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 말은 뭔가 마음을 허 하게 한다. 

글감은 떨어졌지만 구석에 떨어져 있는 낱알 하나까지 모아서 밥을 지어본다. 어디가 아프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는 대체적으로   전과 비슷하지만 모르는 발전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일들을 떨어내려고 노력했다. 먼지떨이가 떨어낸 것도 있지만 전혀  효용을 내지 못한 일들도 숱하다. 금방 잊어버릴까 싶어 적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12월의 다섯째 . 여느때와 같이 글과 말이 적히는 .


할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2주 정도 전에 찾아가 영업이 끝난 할머니 식당에서 오랜만에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내 걱정이 많았다. 스스로 믿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들킨 것인지, 그저 조부모가 가지고 있는 기우의 일부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고구마 피자를 꼭 사다 달라고 했다. 더 이전에 있던 추석의 나는 앙상하게 마른 외할머니의 손목을 본 이후 한 번 더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그 과정에는 많은 슬픔이 있기에.


나는 달고 살던 비염을 버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다. 미미한 효과에 그친 노력들을 비웃듯이.  턱의 신경을 끊은 코블레이터는 콧속 불편도 끊어냈다. 숨은 이렇게 쉬어지는 것이다. 나는 모르고 살았다. 시력 교정술 이후에 경험하는 편리함과 같이 분류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물지 않아 코에서 피가 흐르고 딱지가 지지만 충분한 대가로다.


왈칵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다시 많아진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견뎌내는 일의 무용함을 늘 느끼고 있는 내가 어리석다. 주저앉아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얼기설기 엮은 고철이라도 끙끙대며 밀어 궤도에 올렸다. 나는 내가 질질 끌어오던 것을 내려놓았고 용기를 내서 끊어냈다. 어차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칼은 정확한 절취선을 찾아냈다.


이전의 나는 생각했다. 지금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야생동물이다.  바깥으로 나가면 모든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현재의 나는 지금 매일 지느러미를 움직여 대양을 건너야 하는 물고기이다. 그나마 아늑했던  속은 없다. 무리와 함께 다투며 종착지에 가리라.


수세에 몰려서  시간을 지내다 보면 내가 정말 구석에 몰려 린치를 당하는 상황을 앞두고 있는 것인지 혹은 원래  자리가  면을 벽으로 막은 이곳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축복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적어도 내가 등진 곳에서의 위협은 없지 않나 싶어서. 포식자가 되고 싶었다. 먹이사슬의 윗편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스스로  놈이라 생각했었다만 때때로 그저 궁지에 몰려 필사적으로 달리는 피식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싸구려 위로가 판을 치는 세상임은 변함이 없지만 싸구려 위로도 때로는 불량식품처럼 마음 한편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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