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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Aug 05. 2022

남 편과 내 편, 나는 둘 다 가질 수 없는 사람

7월의 너에게 좋은 곳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다.

7월 6일

무언가에 계속 치이고 밀려서 글쓰기의 순번이 저 뒤로 밀려났을 때 나는 내가 정말 납작하고 평면적인 인간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납작당면이 싫다. 맛있는걸 너무 압축해서 또 잔뜩 먹으려는 심보가 들어간 음식 같아서.


몸이 좋지 않았지만 할 일을 해야겠다. 그것은 돈이 되지 않는 업무이자, 과업이자. 나의 일생동안의 숙제였으므로 미룰 수는 없었다. 당장 다가오고 있는 대학원 입시보다, 내일모레 출국하는 하와이보다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괜한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을 세상은 미련하다고 치부하는 모양이다. 경험은 괄시되고 달성과 성취의 가치는 곤두박질친다. 내가 대단하다고 여기던 일마저 이제는 그런 식으로 가치에도 하청을 줘버린다. 상향평준화라는 말이 그들이 있는 방문을 닫으며 걸어 나온다. 마치 자신이 당연한 세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7월 7일

후공정이 더 번거로운 어떤 작업은 채무처럼 쌓인다. 나는 작업을 빚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부재이지만 나는 뭐라도 땅에 꽂아 기점을 만들어야 한다 여겼고 그 깃대에는 다양한 것들이 걸려 나부꼈다. 작업 빚쟁이가 되어버린 나에게는 차용증을 써주었고 나오지 않은 영어성적엔 임의 동행서를 발행했다. 분명 수분이 빠져나가 작아질 볼륨에는 다시 몇 주 고생하면 돌아올 거라며 어르고 달래는 말들을 적었다.


7월 8일

하와이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은 불면을 겪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주에 다녀온 목표지는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주었고 나는 한 주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지냈다. 닫힌 사회가 주는 폐쇄성은 때론 매혹적으로 느껴지며 나에게 굉장한 효과를 발휘한다.


11년 전의 나날을 떠올리게 하는 긴긴 비행이 케케묵은 마음과 오래된 감상을 모두 꺼내어 재조립하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린 다리와 앉은 자세가 주는 소화불량을 견뎌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몸을 더 혹사시킬걸 그랬다.


긴히 원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에 자상을 내더라도 일정 부분을 잘라 떼어 어디론가 이식할 필요가 분명하다며 간절했으나 닿지 못했던 일들이 말해주었다.

내가 고통을 무릅쓰고 벼르고 벼르던 일을 행하고자 나섰을 때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지 않기를 바랐다. 일전에 표시해두었던 자리에 정확히 칼을 대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7월 9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어느 잠자리에서 쓰는 글에 특별한 힘이 있으리라 믿어보려 했다. 드디어 문을 열고 나온 마음이 오래 다물어 단내가 날 법도 한 입을 처음 떼며 전한 이야기에는 좋고 싫음의 가치가 없었다. 그저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성년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느꼈던 생경함에서 오는 즐거움을 서랍을 뒤지고 뒤지다 바닥을 더듬어 찾아야 할 정도로 꽉 막힌 난장 사이에서 겨우겨우 찾아냈다.

단단히 심연과 붙어 꺼내 집어 들 수는 없었지만 정말 오랜 시간만에 그를 보았다. 비단 짐을 챙기다가 실수로 뒤집어엎어버린 고디바 상자 속에서 주유패스가 굴러 나와 그런 탓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낯선 이는 얕고 넓은 취미의 진입장벽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건조한 코와 몽롱한 정신을 점점 피곤해 늘어가는 상대의 쌍꺼풀 겹수와 위로 잘 말린 속눈썹 개수를 헤아리며 붙잡아 놓고는 흩어질 것만 같은 주의력을 겨우 주의를 끌어 울타리 안에 가두어놨다.


7월 10일

시차가 있었으나 어차피 박살난 패턴이라 이래도 저래도 피곤한 건 매한가지 었다. 아직까지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새로운 경험보다 널찍한 침대와 창이 두 개인 방에 들어오는 아침 바람이 더 여행스러운 마음이다.


오늘이 며칠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한창 허우적대고 온 몸에 더러운 것들을 묻히고 구를 때, 나는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혹은 오늘 식사를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했던 이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어떠한 형태의 우울이라도 나는 괜찮았지만 늘 그와 함께 다니는 박탈감이나 불안은 내 뒤통수를 붙잡고 휘적대던 사지를 일순간 잡아갈 곳 잃었던 팔다리를 안정해주었다. 그리곤 이내 움켜쥐고 있던 머리끄덩이를 다시 진창에 처박았다. 차라리 우울감이 그나마 나를 다정하게 대해주는 부분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무기력했다.


6월에 썼던 글들을 위치의 힘을 빌려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았다. 어두운 남의 방에서 기괴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글도 어울리지 않는 말들로 잔뜩 꾸며서 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왜 이렇게 기억이 나지 않을까. 왜 자꾸만 무력하고 살이 빠져댈까.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안달하게 될까. 나는 이 걱정들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냥 날아가던 작은 벌이 나한테 부딪혀 땅으로 고꾸라졌던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은 언어적인 전달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행위로도 종종 전해졌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장소가 어디던 시간이 언제건 항상 비슷한 생각과 마음을 가진다. 파고는 높아지기도 하나 결국 보통의 방파제를 넘진 못했다. 나에게 기쁨이란 그런 것이다. 아주 높은 파고가 와도 평시의 마음이 단단히 잠가 쌓아 놓은 테트라포드에게 부딪혀 산산이 사라지는 거.


망쳐놓은 컨디션에 소화나 기존의 스트레스가 기름을 부었다. 에어컨은 습기를 머금은 방을 전혀 쾌적하게 만들지 못하고 팔뚝에 닭살이 돋을 정도의 찬 바람만 쏟아냈다. 금방 식어버리는 열정의 유통기한. 나는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아쉬운 대로 내가 두고 온 것들을 뒤적거리며 잊지 않으려고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함이 더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알던 것도 까먹고 알아야 할 것도 습득 못한 채 파랗게 질려가는 내가 싫었지만 칼은 내 손에 들릴 것이고 내가 찔러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열심히 살아야지. 남들이 가진 것들을 빼앗고 싶으니까.


7월 11일

별 의미가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해보려 노력해도 나는 그렇게 안된다. 언제나 우울은 삶을 덮치고 나는 그저 덮밥이 되기 위해 퍼담아진 밥이라고 스스로에게 암시하는 수밖에 없다.


며칠 내내 속을 비워내 기력이 쇠했지만 돌아갈 집은 일주일 후에나 있었다. 여행은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다. 집에서도, 익숙하고 편안할 법한 장소에서도 나는 불편하고 불안한데 머나먼 낯선 곳에서는 오죽할까.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면 나는 이제 여유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푹신한 잠자리에서도 맛있는 만찬 앞에서도 나는 전혀 즐길 수 없는 인간이 된 따름이었다.


기억이 너무 안 난다. 내가 배웠던 기술도 외웠던 언어도 기억이 잘 안 난다.


7월 12일


귀하에게 쓴 편지의 일부


... ...

19살 때 나름대로 노력을 기했으나 스스로 이건 실패다.라고 꼬리표를 달게 된 입시를 기억합니다. 후회는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어딘가에 아주 끈적하게 들러붙어서 차라리 시멘트를 다시 바르고 나라시까지 다시 해서 이 방이 조금 좁아지는 것을 감수하면서라도 잊어야 하는 흉물이 되어버렸더랬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대개 제가 극복하거나 연료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유독 10대 때의 기억은 쉽지가 않아요.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땐 자격이라고 전혀 인지하지 못하던 것들이 저의 자격이었고 저는 그 자격을 부여받기만 했지 상응하는 결과나 행동을 해내지는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처음 페이가 있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저에게 가장 괴롭고 무섭고 힘든 일은 바로 성형, 정형, 초벌, 시유, 재벌의 전 과정에서 뒤로 갈수록 개수가 적어지는 그릇의 양이었어요. 성형에서 비품이 생기고 그 이후의 과정에서 하나 둘 생기다 보면 마지막 과정인 재벌을 때고 나온 기물의 개수는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저 페이를 받는 일꾼일 뿐이고 제가 그 시간 동안 망친 기물들은 모두 손해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너무 무섭고 능력이 커진 지금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책임질 수 없는, 혹은 기피하고 싶은 책임이 일어나는 상황이 아닐까 해요. 늘 삶은 피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고 그것을 직면하고 정신을 붙든 채로 통과하거나 깨부수거나 해결하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봅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 능력이 너무나 작아진 것 같다고 느껴요. 혹은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이 커진 것일까요. 기억이 나던 것들도 나지 않고, 작았으나 그래도 타오르던 자신감이 점점 사그라듭니다. 나름대로 라는 말이 저에게는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확인해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나름대로' 기대했거든요. 저는 타지에 있었지만 오랜만에 불쾌한 끈적거림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를 모르는 인간일까요? 제가 열정을 모조리 잃기 전에 귀하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정말 저의 사고가 다른 사람이랑은 다른 부분이 있나 봐요. 사랑이나 배려 같은 것보다 노력해서 투자한 여러 가치들을 갚지 못하게 되는 게 전 더 괴롭고 힘든 걸 보면 말입니다.

... ...



흐리고 높은 파도가 치는 날 바다에 가서 몸을 담갔다. 거긴 정신을 놓고 물에 있다간 쓸려가서 연안 어딘가의 익사체로 발견되기 딱 좋았다.


그러나 저조한 컨디션과 우울한 마음을 반신이라도 집어넣은 바다에 다 던지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와이키키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원 없이 본 바다와 함께 생각을 흘렸다. 태평양 바다에 나쁜 기억을 다 버리고 오라는 말씀과는 별개로 나는 이 해안도로에서도 쭉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구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아는 사람의 범위를 줄이고 긴축해나갔던 이유는 아마 내가 감정을 숨기는데 너무나 서투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원치 않는 내숭을 떨고 체면치례를 하기에는 낯이 너무나 간지럽고 뜨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뿌린 재화 중 그 어떠한 것도 나를 위해 쓴 것 이외에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마주하고 났을 때 나는 온전한 내 것과 내 편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


7월 13일

막상 현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명확히 답할 수가 없다. 큰 바다를 지나야만 올 수 있는 곳에도,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과 귀갓길에도 나의 현실이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좀처럼 땅에 붙어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 몽롱한 상태로.


여기저기 거처를 마련한 이들을 또 질투하면서 나는 두둥실 떠다녔다. 공중에 발을 아무리 굴러봐도 박차고 땅을 나가는 만큼의 추진력을 낼 리가 없었다.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오늘도 머릿속을 채웠다. 마치 아주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나, 휘적휘적 우스꽝스럽게 사지를 흔들어댄다.


7월 14일

와이키키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이 바다 위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외국인들 사이가 바로 그 누구도 모르고 소통하지 않으려 마음먹으면 입을 꾹 다문채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꽁꽁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정신과는 달리 몸은 유유히 바다를 떠다니며 넓고 평온한 바다의 짠맛을 코로 입으로 느꼈다. 돌아가면 하려고 마음먹은 일들도 지금 코로 들이킨 바닷물만큼이나 코를 찡하게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7월 15일

시간이 흘러서 한 일주일 즘 됐을까 나는 이성이라고 불리는 선을 얼핏 골라 잡아낼 수 있었다. 전에는 붙잡은 이게 파스타 면인지 잔치국수 면인지 알 수도 없었을뿐더러 행여 내가 삼킨다고 해도 배를 앓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명확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정신줄의 형태를 기억해내고 수많은 사짜들 사이에서 꽉 쥐고 내려섰을 때 호방하게 선언했던 나의 목표들이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 발을 구르고 팔을 흔들며 엉킨 끈들이 나부끼고 그 끝에 달린 무거운 책무들을 뒤로한 채 달려 나가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는지.


빚은 늘고 능력은 상환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빚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리. 오늘을 팔아서 내일을 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지 않았었던가. 오늘의 가격을 더 높게 후려쳐서라도 내일의 기쁨을 더 사들이는 거.


집으로 돌아가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근육을 찢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상처를 주는 행위가 나를 유지하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연명의 일환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나 나는 당장 운동을 하지 않으면 쌓였던 스트레스를 또 자기파괴적인 행위들로 해소해야만 하니까. 비문도 이런 비문이 없다.


내가 아쉬워하는 이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생각을 해보면 이 또한 결핍과 부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선택지의 축소는 도리어 심한 고심을 만든다. 31가지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보다 그저 심심한 맛 두세 개 있는 물에 담긴 스쿱을 위에 둔 음식점 구석의 통 아이스크림이 차라리 더 설렌다.


나는 그래서 때로 해소를 위해 멍청한 선택들을 즐비하게 한 후에 후회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그 한정적인 감각에 이상하리만치 안정적인 느낌을 가지곤 한다. 아마 이 분야의 정점엔 죽음을 앞두고 초연했던 이들이 있으리라.


7월 16일

완벽에 대한 강박이 나를 괴롭게 했다. 지쳐도 완벽하게 지쳐야 했다. 애매하게 온 낙담과 책망은 싫었다.


객관적으로 내가 지쳤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지표는 다름 아닌 여유 넘치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목격했을 당시였다. 왜 나는 저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지 못할까. 방학이라 들뜬 아이들의 밀린 일기와 같다. 내가 그 일기 자체이다.


7월 19일

전혀 들지 않는 유도제, 9시간 내내 앞 좌석에서 울어대는 아기. 코로나에 걸려서 하와이에 남게 된 첫째 동생. 인천공항에서 발열 때문에 격리된 둘째 동생. 붉게 그을려 타버린 뒷덜미와 등. 후려치기 당한 300불짜리 오팔 실버 팔찌. 꽉 차 버린 마이너스통장. 밀려있는 반건조 작업물과 태평양 위에서 전부 새하얗게 잊은 해커스 리딩 완독.


0, 제로섬. 하와이는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0. 내가 가졌던 것이, 잃었던 것이 얼마나 크던 작던 더하기 빼기 해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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