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꼭 없애주세요!
2024년 10월 29일
생일에는 글을 쓴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바쁘고 정신없는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태어난 날의 글이 주는 의미가 나를 감싼다.
재고하고 초기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다. 초기화라는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장력을 가진 줄이 끊어지고 담아진 그릇이 깨어지는 것과 같다. 모두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그런 일.
이번 생일에는 아침부터 아버지가 아프셨다. 심근경색의 영문명이 하트어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아마 옛날의 사람들은 사람의 몸은 늙고 노화한다는 것을 부모로부터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그때는 노화가 더 빠르게 이루어졌을 테니까.
가까스로 면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결국 사람은 운에 기대어진 아슬아슬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처럼. 인간은 맨틀 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다시금 하루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생일이 하루 지나서 쓰는 생일에 대한 평의회. 어떠한 글을 써야 될지 모르는 날이 오면 필시 슬픈 일이 생겨 금세 글을 다시 쓸 수 있는 상태가 되곤 했다.
여름이 지난 후에는 이미 양생이 끝난 콘크리트 속의 물건을 꺼내려 오함마를 내려치는 마음으로 글을 떠올려냈다.
이따금은 잊어버린 일이 아주 많아서 어디쯤에 굳어져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잊은 것은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적 기억의 총합보다 컸다.
블로그를 쓰는 일은 따로 글 쓰는 것을 소극적으로 만든다. 매일의 일기가 월간서의 출판을 막는 것이다. 그것은 의도된 방해라기보다는 소비의 우선권이 매일에 있기 때문이었다.
블로그에 써둔 글을 한 움큼 떠 와서 옮겨놓는 일이 잦았더라면 쓰는 일이 지지부진하게 미루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주객전도가 되어 메인자리를 꿰찬 약 4개월간 써둔 일기 글들이 대충은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일상에 임하는지 가시적으로 알려준다.
나는 참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는 해초나 낙엽 같은 사람이구나.
인정받고 증명받는 것에 대해서 반추한다. 이전의 일도 있고 현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마가 뜬 사이를 틈틈이 메우고 있는 불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허락되지 않는 일들로부터 기인한다.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가치관에서 반려라는 결과는 쌓은 자존감을 힘껏 내리쳐 부순다. 애초에 간편하게 부서질 자존감이라고 생각하면 객체들의 눈에는 별 볼일 없을 법도 하다. 그들의 눈을 빌려 나도 스스로를 강하게 후려친다.
멍하고 붕 뜬 마음으로 지내는 나날이 늘어감에 따라서 그런 심적 구타와 폭행들로 인해서 머리가 좋지 않아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보처럼 지낸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 하루를 맞이해야 하는 일은 옛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것만 같다. 영면. 왜 영원히 잠들었다고 했겠나! 생각해 보면 내가 입면을 반가워하고 기상을 극도로 피하고자 하는 일과 닮아있다.
매일이 꼭 삶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한다. 으레 사람들은 마지막!이라고 하면 뭔가 의미가 깊고 깊게 기억할 수 있는 일을 할 텐데.
나는 그저 삶의 마지막 밤도 약 먹고 방 치우고 샤워하고 기억도 안나는 미디어를 보다가 스러져버리고 싶다.
그런 마음처럼 나는 특별한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념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행복하고 감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자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감사하게도 나는 감정에 빠져 죽을 만큼의 수량을 가지게 되었다.
애석하고 감사한 생일이다. 다만 예년의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져버린 그것에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까?
마지막처럼 마마 마지막처럼 마지막 밤인 것처럼, 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