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도에 글을 하나도 올리지 않은 게으른 자
'25년도의 생일쯤의 나에게,
귓바퀴에 염증이 생겨 이어폰을 낄 수 없다. 물리적으로 아파서 빼게 된 이어폰을 바라보면서 괜스레 누군가가 늘 수군대며 나를 험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실체 하기도 하며 나의 망상적 사고이기도 해서 이어폰의 실직에 대한 해석이라기엔 과잉하다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고민을 말한 적이 적다. 나는 이래서 무섭고 저래서 두렵다. 다가올 미래를 피하고만 싶다 이런 말.
후원해 주고 지지를 보내주는 나의 사랑의 근원들에게 차마 허탈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고 그런 마음은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다를 것 없었다.
여태까지 나의 삶에서 으레 그랬듯 단순히 일정한 시간 동안 공간과 조직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허망한 생각이 친구라는 단어를 내 속에서 흐리게 했다. 그것은 점점 파도에 부서져 매끄러워지는 몽돌과 같기도 했고 이어서 풍파에 의해서 튿어진 어떤 절벽도 떠오르게 했다.
이전에 빠져있던 무력한 연민과는 멀어졌기에 내가 가진 어려움들이 그저 다른 사람도 가진 어떤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슬픔도 정도가 필요하고 비집고 나온 감정은 때로 추하게 보이기도 하니까.
타인에게 나는 어떤 일들이 그저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현상은 벌어지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덕을 본다.
그리고 그런 부작용들은 나에게도 여과 없이 찾아온다. 다만 그렇게 말하고 받아들이는 나일지라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
고립감, 그리고 낙담하고 자신감이 사라진 나날들. 마른빨래를 개기 시작하는 것조차 결심이 필요한 날들. 그래서 단시간의 외출에도 무기력해지는 그런 날들.
소속이 사라지고 지탱해 주는 보조들이 점점 사라져 결국 혼자 우뚝 서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 성적 역할과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어쩌면 비틀린 남성으로의 인간으로의 시간들과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들.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했던 거짓말. 상처 준 사람들. 사과할 수 없고 사과받을 수도 없는 시간들. 용서는커녕 소통 자체를 거부한 상황들.
척하고 체하고 하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막연하고 낭만적인 말도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난이도를 선사하지 않는데 이것은 어떠한 형태의 절대자나 법칙의 개입으로 인한 것인가? 유리잔에 돌을 마구 쏟아 넣으면 깨지듯이. 얼음에 불을 영영 담을 수 없듯이 그런 터무니없는 일과 같이 느껴진다.
웃을 수 없고 그렇다고 울며 주저앉을 수도 없는 날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으니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나도 저 사람의 시간도 언젠간 끝난다고 생각하면 직전에 생각한 불합리함과 역설적인 일들이 종국에는 공평한 일로 재배열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 내려놓고 전화기를 끄고 머리를 박박 밀고 어디론가 흩어지고 싶다가도 너무 오래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생각 자체가 되어버릴까 봐 아직은 길이를 유지하는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 즉, 내가 선 곳보다는 정서적 안정과 평안함에 가깝게 선 사람은 의아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만성적으로 된 부정들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정말 비극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안국으로 넘어가던 길인가, 함께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이동하는 길에 나는 비에 젖은 창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많은 후미등을 바라보았다. 길쭉하게 한 줄로 이어진 붉은 등은 필시 내가 언젠간 닿고 싶은 곳의 현신처럼 느껴졌다.
늘 내가 너무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이후에 들이닥칠 슬픔에 대해서는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알아차렸다. 환절기를 대비해 쓰고 나간 마스크. 인천공항에서 드러나지 않은 얼굴의 모습을 끝으로 그나마 예절 바르게 문을 두드렸다.
어떤 마음이 하루를 넘어 일 년을 넘어. 10년 넘게 매일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건 어떤 애정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중단을 향한 나의 애정. 너무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닥쳐올 슬픔은 눈치챈 그 순간부터 아주 오랜 시간 나를 슬프게 하는데 말이다.
내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별안간 생겼던 고리에 내가 걸어둔 것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 걸려있는 것들과 이후 필요로 할 때에 선택할 수 있는 나날이 온다면 나는 준비된 사람이고 싶었고, 더불어 그 준비와 내가 걸었던 모든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만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발적인 나의 움직임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무미하게 지나간 생일의 날. 고요함에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주간이라는 말이 생소해서 되물어봤던 날이 생각났다. 생일의 날의 근처가 모두 생일이 되는 라이프스타일은 여간 이해가 쉽지 않다.
견물생심이라 아무 생각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한 하루에 기뻐하는 기꺼운 마음이 떠오른 것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