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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Oct 31. 2021

도망친 곳에서 맞이하는 생일

2021년 10월 29일, 나의 생일

일 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다. 작년 이때 나는 혼란을 잠재우고 어떤 기점을 돌아서고 있었다.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있던 25살의 나는 이 나이가 5 곱하기 5의 만족스러운 숫자를 가진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영 다르지만 받아들이는 법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에.


이전의 글들을 업로드하는 작업을 게으르게 해대고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글을 쓸 마음도 점점 줄어갔다. 나는 일상의 감상들을 대폭 줄였고, 머리를 비웠다. 한때는 생각이 가득 찬 머릿속이 나의 고통의 근원이 아닌가 싶어 생각 비우기를 염두에 두고 썰고, 퍼서 덜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생각은 지구에서 가장 생존력이 강한 기생충. 내 마음속에 이미 자리를 잡은 이상 흔적조차 완전히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시간은 호수를 마르게 하고 바위를 뚫는다. 곱씹는 반추 행위를 쥔 손의 힘을 점점 빼내고, 그 악력이 비로소 잡고 있던 일들을 놓아 떨어뜨렸을 때 나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내게 내려온 수많은 손들이 자신의 전완의 힘을 빼앗아주길 바랐고 나는 그들의 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망각은 축복이라고 생각하길 반복하며 익숙해지고자 노력했다. 망각은 행복도 지우지만 고통도 지운다. 그것을 선별하는 일은 억지일 뿐이라며 모조리 잊기로 했다. 사진도 지우고 글도 지웠다. 어제의 나의 책임을 나에게 지우는 일을 그만두려 그날의 감정은 그날 분리수거하기로 했다.


다만 감정이 풍부한 것은 축복인지 저주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격하고 유동적인 감정의 흐름은 나를 피로하게 하고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한다. 나는 쉽게 녹고 얼어붙는 이 감정의 호수를 바다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였거늘, 자연적인 침식으로 바다에 닿기에는 그저 멀리 바람에 타고 온 소금기를 느끼려고 애쓰는 모습만 보여 안쓰럽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욕보였나. 포기할 수 없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이루리라. 그로 인해서 소리 지르고 길길이 날뛰고 싶은 감정을 억누른 게 최근에 한두 번이 아니다.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과적되었다는 말로 알아듣겠다. 이 분노는 또 나의 삶의 연료로 사용될 것이다.


누누이 생각하고 말하지만 나에게 생일은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니다. 그래서 우습게도 나는 생일을 보내는 법을 타인의 생일을 보며 학습했다. 과연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의심은 생일을 보내는 방식에도 들었다. 사실 생일에 대한 감상을 적는 일이 아마 올해로 4번째. 4년간의 고정적인 관념에 대해서는 나의 나이와 삶의 태도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제는 어느 정도 바뀌지 않는 고착 관념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의심을 뒤로하고 나도 행복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들의 방식을 받아들였다. 몇십만 원짜리 선물이 가까운 이들과 오갔고, 메신저 대화창을 교환권과 축하의 말이 달궜다. 사랑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피로함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피로가 누적되어 염증이 되고 나면 나는 문득 그것이 싫어진다. 나는 내가 정을 떼는 일에 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웬만큼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짜증 조금 내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비슷한 일들에 대한 피로로 생긴 염증에는 인색할 수 없었다. 그대로 직시하고 도려내버리기로 했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너희들의 안위는 너희가 챙기고. 너희의 부재로 인해 철철 흘리는 피와 움푹 파인 나의 일부분의 치료는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올해의 생일을 기다렸다. 나는 올해 아주 멀리 도망쳤으니까. 죽음을 먹는 자들이 릴리가 걸어놓은 보호 마법이 풀리는 날을 노려 해리를 공격했듯이 나는 많은 보호를 잃었고 올해는 소실로부터 처음 맞는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역경이 펼쳐질지 고대했다. 올해부터 홀로 서 멋진 글들과 쿨한 작품들로 나의 커리어를 채우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자존감은 빠른 침식을 겪었다. 그러고 나서 들려오는 말들은 내가 학생으로 있을 때 믿었던 것들을 모조리 부정했다. 나이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삶의 방식을 하나 둘 정해놓은 정도는 되었고, 이제 와서 픽스라고 생각했던 내 테이블을 뒤엎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기대라는 말이 너무 비참한 단어 같아서 쓰기 싫어진다. 기대를 하는 사람은 을이 된다. 행위를 받는 자가 되고 나면 생기는 조바심을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상대가 확실한 뜻을 밝히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손가락 끝을 깨물고 다리를 떨게 된다. 월화수목금토일. 거의 일주일의 모든 날들을 실망하며 지낸 지 거의 10개월이 다 되었다. 작년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기억이 난다. 배달 어플의 주문이 열 번 가까이 취소당했던 날. 그쯤. 나는 기대했다. 을이 되기를 자처했다. 을이 되어도 좋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겸손과는 다른 일이었기에 어리석었다기보다는 그만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나? 의아한 과거의 나.


아무튼 나는 기대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머리가 박살 났는지 올해의 생일을 기다림에 더해 기대했다. 제발 많은 이들이 내가 믿고 있듯이 나를 진정으로 버린 것이기를 바랐다. 그들의 머릿속에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차지하고 있으면 어서 방을 빼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계약서를 찢고 싶었다. 타인의 삶을 관음 하는 일이 일상과 시대정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번만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리라 생각하며 피로를 자처하고 염증을 유발했다.


결과적으로 미련은 깨끗하게 씻겼다. 빠른 세상의 손쉬운 상심을 비판하면서도 나는 그것을 이용해 마음을 점치기를 바랐고. 결과는 딱 알맞은 자리에 안착했다. 나는 신경 쓰였던 것들을 모두 칼로 파내고 너희 손에 달랑거리던 일말의 어떤 것도 거의 빼앗다시피 놓게 했다. 좋아. 난 이제 자유다.


주류라고 믿던 것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지엽적이기 그지없는 일이었고 존경하는 이들은 그런 일에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삶의 방식을 복제할 필요는 없지만 태도 자체를 체화한다면 대체적으로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버렸노라,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노라. 마침내 남은 것이 내 것. 나는 애매한 소유권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은 고통받는다. 둔감한 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봐야만 하고 그것들에 대한 교정을 내심 원하게 되니까. 바르게 놓여있지 않은 물건들을 내 손으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일이 틀어지거나 잘못될 것만 같으니. 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의 부품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알게 된 진리 중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의 하나였다. 결국 남을 것은 남았으니 지나가버린 것들에 미련을 버리는 일은 평생에 걸쳐 연습해 능숙하게 만드는 것이 좋겠다.


대장부는 소인배와 논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나는 아직 대장부가 되지 못했으나 스스로를 소인배라 칭하기 싫다. 싸우지 않는다지만 겁쟁이의 허풍인지 강자의 만용인지 알 수 없다. 분란을 피했다는 사실은 남지만 너희가 영영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언젠가 대장부가 되고 마음속에 품은 강철을 벼려 모두의 목을 쳐 떨어뜨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섞여있던 허풍들을 모두 만용이라고 뭉뚱그릴 수 있을 것이다. 찍어 누르는 힘. 막아내는 것은 뚫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준비와 힘이 필요한 것이니까 그날이 오면 꼭 목을 닦고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이제는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체를 지우는 과업을 지고 가리.




생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잘못 탔다. 애초에 버스를 탄 이유도 시간대가 사람들의 귀가 시간과 맞물려 택시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마운 선물들이 손에 많아 버스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탄 것이라 기분이 별로였다. 지나쳐만 간 역에 내려 환승을 거듭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눈물이 왈칵 흘렀다. 그날 우연히 들려와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뒀던 발라드가 슬퍼서라 변명을 늘어놓기엔 최근의 일들이 버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이성적인 체, 냉정한 체 해도 손목을 자르고 살을 파내는 일이 편안하지는 않다. 감정이 찰랑인다며 몸에서 보내는 신호가 있다. 목 안이 붓는다. 그래서 뭔가가 걸린 것처럼 침이 잘 넘어가지 않고 후두가 뜨거워진다. 삶을 가지 치고 재정비한다고는 하지만 떨쳐낸 것은 결국 한 때 나였던 것이기에 근래 얼마간 목이 부은 느낌을 점점 더 자주 느껴야 했다. 민망스러운 귀가가 있은 후로는 아마 당분간 목은 나에게 부은 느낌을 주지 않겠지만 언제 어디서 사소한 것에 엎어져 엎질러질지 모르는 삶이 사실 편안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날들이 썩 내키지가 않는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치장한 사람들도, 오가는 속 빈 말들도 염증스럽다. 나라고 기념일과 날짜의 붉은 날이 싫겠는가, 다만 내가 매일 통과하는 버거운 일들은 고통이며 겨우 균형을 맞춰놓은 역경인데 흐트러지는 느낌이 괜스레 들어서. 길게 써놓은 글과 전혀 대치되지 않는 실제 감정에 드는 이질감. 이제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모순을 도려내지는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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