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돈을 기준으로
믿게 되었을까

by 이보미

처음부터 돈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 질서를 특별히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사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사람들을 얼마나 지치게 만드는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돈은

삶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였다.


비싸면 좋은 것,

많이 벌면 성공한 것,

눈에 띄면 가치 있는 것.


이 단순한 기준은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지만,

사람을 더 안정된 존재로 만들지는 못했다.


비교는 일상이 되었고,

자존감은 수치에 종속되었으며,

정신은 늘 부족한 상태에 머물렀다.


우울과 불안,

자기 과잉과 자기 혐오가

동시에 늘어난 이유를

개인의 성향이나 노력 부족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개인의 경제적 위치가 아니다.

부를 삶의 중심 가치로 설정해온

사회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부자가 되는 과정과 결과가

삶의 방향과 의미를

대신하도록 작동해왔고,

많이 가지는 것,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과 가치의 기준으로 굳어졌다.


이 질서는

놀라운 일도, 예외적인 일도 아닌 채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 구조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지

삶을 더 안정되게 지탱하고 있는지는

점점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의문은

특정 집단의 좌절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번지는

조용한 질문에 가깝다.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대개 탐욕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단일할 때

그 감정은 쉽게 증폭된다.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실제 평가의 잣대는 하나뿐이라면,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기준 삼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명품은 물건이 아니라 신호가 되고,

소비는 취향이 아니라

자기 증명이 된다.


하지만 요즘,

이 신호는 점점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때에 따라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돈이 위험해졌다는 뜻이라기보다,

돈이 삶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감각에 가깝다.


열심히 벌어도

미래는 보이지 않고,

안정은 멀어진다.


AI라는 기술은

이 감각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노력과 보상의 연결은 느슨해지고,

성과는 일부에게 집중된다.


이쯤 되면

삶을 단 하나의 가치에

계속 맡겨도 되는가,

질문하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지킬 수 있는 것들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관계,

태도,

자기만의 리듬,

삶을 바라보는 방식.


이 움직임은

도피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에 가깝다.


돈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는 인식.

그 감각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명품을 더 이상 좆지 않는 사회가

가난한 사회일 필요는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 취향대로 비싼 물건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선택한다.


서로를 부러워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것은 평등이라기보다

성숙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이 변화의 초입에 서 있다.


돈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정신의 가치가 이미

중심이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이 최고 가치로 작동해온 시간이

점점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 인식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가치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다시 균형을 향해 이동해왔다.


너무 빠른 이후에는 느림이,

과시 뒤에는 침묵이.

계산이 끝난 자리에는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 존중과 생명 존중이

다시 중요한 가치로 돌아오는 시대로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길은 멀고,

눈에 잘 띄지 않으며,

확신보다는 질문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을

이미 선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변화는 언제나

그 조용한 선택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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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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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다양성의가치

#인간존중

#시대의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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