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중

by 이보미

언젠가부터
내가 왜 지금의 삶을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특히 마흔 이후,


삶의 방향과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나는 번역을 시작했다.


그냥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주 깊게.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마흔 즈음의 늦은 출발이었고
그때까지 했던 일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

설렘 반, 걱정 반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번역은
새로운 문장과 세계를 열어주는 작업이었지만
기억력과 집중력을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섬세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예리함을 계속 붙잡아 두는 일이
조금씩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다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크고, 또 선명해졌다.


번역을 시작한 것도

뭔가 좀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 중심에는

약한 생명체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그 마음만은

어떤 형태의 일이 되어도

지켜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일의 모양이 바뀌는 것에는

생각보다 큰 두려움이 없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시기에는
몸을 움직이고 싶었고,


손으로 만드는 일에 몰두할 때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다.


완전히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했다.


광고 디자인을 하던 시절의 생각,
맞춤복을 만들던 손의 감각,
번역을 하며 길러진 언어의 결,


그리고
동물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배운
다정함과 안타까운 마음까지.


이 모든 시간은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

지금의 일을 만나게 되었다.


가방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광고를 돌리고,
글을 쓰고,
브랜드의 톤을 정하는 일은


손과 머리와 마음이
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경험이었다.


지금만큼은 신기하게도
“다른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지루하지 않고,
과하게 벅차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고
어디 한쪽이 비어 있다는 느낌도 없다.


지금껏 경험했던 모든 결이
하나로 모여드는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강아지들과 함께한 시간 또한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온

중요한 조각이었다.


말이 없는 생명체들과 함께하며,

나는


함께 산다는 것,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존중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브랜드는 시작이지만,


이상하고도 조심스럽게
‘완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는

그런 감각 때문일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오늘 하루도,

참 고맙다.



#삶의조각들 #삶의방향 #일과삶 #천천히살기

#브랜드이야기 #만드는삶 #과정의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