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완벽해야 할 것 같고,
하나라도 어기면
그 말을 쓸 자격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는 비건이라는 이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정확히 지키고 있느냐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무엇을 하나 더 내려놓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에어블리스를 시작하며
내가 가장 분명하게 정한 기준은 하나였다.
내가 만드는 가방만큼은
동물의 희생 위에 놓이지 않게 하자.
그래서 에어블리스의 가방은
동물성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소재뿐 아니라,
보강재나 안감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고 노력해 왔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비건 가방이면
환경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원단만 쓰는 건가요?”
하지만 비건이라는 기준은
환경이라는 질문보다 먼저,
동물에 대한 선택에서 시작된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을 긋는 것.
그 자체로
비건 가방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비건이라는 말은
‘친환경’이라는 단어와 함께 묶여 쓰이기 시작했다.
가죽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
초기 비건 브랜드들이
윤리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온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비건과 친환경은 같은 말은 아니다.
비건은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준이고,
친환경은 재료와 공정, 사용 방식까지 포함하는
또 다른 질문이다.
비건 가방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선택이 완벽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건, 플렉시테리언, 락토, 페스코 같은 말들은
우리가 편의를 위해 붙인 이름일 뿐,
그 안에 정확히 들어맞아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 경계 위에 서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나는 비건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가죽으로 만든 모든 물건을
무조건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가죽 공방에서는
식용으로 사용된 뒤 남은 가죽을 활용하거나,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베지터블 가죽처럼
덜 해로운 공정을 거친 가죽만을 선택하기도 한다.
시간과 비용은 더 들지만,
토양과 수질에 남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더 옳으냐가 아니라,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죽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가
내 작업 전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만든 이 가방이
모든 연약한 생명체들의 자유로움에
조금이라도 덜 부담이 되는 선택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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