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선택.
나라면 하지 않았을 방식.
옳고 그름보다
단지 잘 납득되지 않는 방향.
그럴 때 나는 불편함보다는
묘한 걸림을 먼저 느낀다.
왜 저러는 걸까.
어디에서부터 다른 걸까.
나 자신도
내 선택을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 타인의 삶을
끝까지 이해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른다.
각자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너무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넘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시간이 흐르고
몸이 약해지고
죽음이 멀지 않은 개념이 될수록
사람은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말의 끝이 둥글어지고
확신이 줄어들고
남을 판단하는 힘도
함께 약해진다.
신기하게도
서로의 방향은 더 멀어졌는데
오히려
우리가 같은 곳에서 왔다는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우리가 죽음을 ‘끝’이라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아마도 그 이유일 거다.
앞으로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
비교하던 마음도
증명하려던 생각도
조용히 접고
처음의 상태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계들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설득할 필요도 없는 상태.
그저
아주 오래 같은 시간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남아 있는 연결.
오래 보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해지는 정도의 온도.
어쩌면 관계의 마지막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판단이 사라진 자리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매우 비슷한 곳에서 왔다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보는 것.
그 정도의 깨달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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