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7~8년 전, 처음 개모차를 끌고 나갔을 때였다.
반려견 코코와 코나가 아파서 오래 걷지 못해
산책을 위해 유모차에 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신기하다는 눈길은 괜찮았다.
문제는 어떤 아저씨의 말이었다.
"말세다. 말세~"
버럭 화를 내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다르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개모차를 끌고 강아지를 태운 채
장바구니 아래에 물건을 가득 넣고 가는 풍경이 흔하다.
개모차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어르신에게는 지팡이처럼 걸음을 돕고,
몸이 불편한 반려 동물에게는 편안한 이동수단이 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도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문화가 된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강아지를 가까이하기 쉽지 않았다.
물컹거리는 촉감이 징그럽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됐다.
강아지는 물론 소, 돼지, 닭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예전에는 '보신탕용 개는 반려견과 종자가 다르다'는 말이 당연한 듯 떠돌았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구분이다.
한때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었고,
심지어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고통조차 다르게 느낀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당연하지만, 과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미래에는 당연한 것.
우리가 지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은 네 명 중 한 명이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식탁 위로 이어진다.
물론 인류가 오랫동안 사냥으로 고기를 먹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음식을 위해 동물을 대량으로 길러내는 과정이다.
좁은 공간에 가두고 평생 고통을 주는 방식은
우리가 반려견을 자식처럼 아끼며 살아가는 태도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요즘은 고기를 줄이거나,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함께 산책하고,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조금씩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
2070년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할머니, 정말 옛날에 살아있는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고 키워서 잡아 먹었어요?"
하고 아이가 놀라며 묻는 날이 오기를.
우리가 먹고, 입고, 신고, 누리는 모든 것 위에
더 이상 그 누구의 희생도 필요 없는 풍경이 놓이기를.
기술이 발달해 고기와 똑같은 맛을 구현해내기를.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우리 모두가 더 자유롭게 웃고 있기를.
2025년 어느 날, 그렇게 소망해본다.
#비건
#비동물성소재
#채식
#반려동물
#생명존중
#미래사회
#비건가방
#브랜드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