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제1 : 다시 가고 싶은 그곳(나만의 장소)]
햇빛이 조명기구만큼이나 너무 눈부시고 따갑습니다. 습하진 않지만, 누군가 적외선 온열기구를 들고 따라다니는 것만 같습니다. 하늘은 너무나도 청명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뭉게구름은 열심히 하늘을 산책하는 것 같습니다. 산이나 언덕 따위의 방해 없이 지평선 너머까지 탁 트인 시야에 괜히 숨이 상쾌합니다. 동쪽 멀리는 구름 밑으로 비가 내리는 게 보입니다.
이제 갓 이등병 딱지를 떼고, 긴 줄을 기다려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부모님께 파병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정신 나간 소리하지 말란 말 이후 들려오던 “뚜.. 뚜..” 소리가 기억납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공중전화 줄을 서며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이윽고 숨 막히는 경쟁률을 뚫고 선발자 명단에 익숙한 군번이 보입니다. 18-76******. 그리곤 정신 차려보니 비행기에서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참 불편합니다. 인터넷이나 전화는 고사하고 씻을 물이 부족합니다. 365일 여름에, 화장실 볼 일을 볼 때는 다양한 벌레 친구들이 작은 콘서트를 열어주곤 합니다. 9개월간 나만의 공간은 생략입니다. 이제는 코 고는 소리로 동기가 무슨 꿈을 꾸는지 알 것도 같아요. 한국 라면, 배달 음식, 과자도 강제 이별입니다. 참 불편한데, 인터넷이 없으니 책을 읽게 되고, 전화가 없으니 동기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과자는 없지만 과일이 기가 막혀요.
과제 작성을 위해 당시 일기장을 펴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단순한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오늘은 구름이 너무 복스러워서 행복했다”, “오늘은 김치가 나와서 행복했다”, “야생원숭이가 내 옷 훔쳐갔다”, “하늘이 너무 파래서 행복하다”, “새소리가 좋았다”. 행복이란 단어가 이렇게 헤픈 단어였나요. 나름, 그냥 흘러가는 대로가 아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삶의 최종 목표인 ‘행복’을 위해서요. 다만, 정확히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고 그냥 ‘이런 느낌이겠지’ 짐작하며 무작정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침에 일출을 보고, 해 질 녘에 노을을 보고, 밤엔 별을 보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정말 당연한 것들을 했을 뿐인데, 20년간 한국에서 그 이상의 것들을 할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내가 좇는 행복이 대충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인지, 어떤 온도에 어떤 향기인지,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도 같아요.
트럭 지붕에 누워 별자리를 세며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던 눈은, 모니터 속 빽빽한 보고서의 오탈자를 체크하고 있고,
동기들과 희망찬 미래를 떠들던 입은 부장님께 실적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상쾌한 저녁공기와 풀 내음은 회사의 숨 막히고 텁텁한 커피 향이 대신하고,
아침 구보를 뛸 때마다 듣던 새소리 대신 부장님의 “광석 씨, 잠깐 내 자리로..”
남수단 3생활관은 아프리카에 하나, 일기장 속에 하나, 두 곳 있습니다. 오늘같이 하루가 고되었던 날은 유독 더 일기장 속 3생활관을 찾고 싶어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