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보리의 첫 번째 이야기

by 김경미

안녕~ 나는 보리라고 해.


몇 년 전 나는 억울하게도 엄마 고양이의 따뜻한 품에서 젖을 빨다 말고 누군가의 억센 손에 붙잡혀 이 낯선 집으로 오게 되었지.

자다가 홍두깨라고 나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어. 그날 밤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지금은 엄마 집사지만 그때는 그저 내게 낯선 사람일 뿐인 여자와 첫날밤을 보내게 된 것이었지. 침대가 있었지만 그 여자는 바닥에서 엎드려 자꾸 나를 바라보면서 연신 귀엽다고 말하며 심지어 내 몸에 손을 대려고 했지. 그 공포를 너희는 알 수 있을까?


비록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나였지만 있는 힘을 다해 입을 벌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하악질을 해댔어.

이래 봬도 내가 육식 동물인데 사냥 본능이라는 게 있잖아. 끝까지 나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경계심을 놓지 않고 그 밤을 꼬박 지새웠지.

둘째 날, 그 집에 또 다른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우리 방문 앞에 철망을 세우고 녀석과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어. 그런데 이건 뭐지? 녀석은, 아니 형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제리라고 불리는 녀석은 내 눈에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지.


‘뭐지? 저 모습은? 배가 땅에 닿으려 하잖아~?’


철망 저 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어. 그리곤 앞다리를 올리고 서서 그저 멍하니 그러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어. 그러나 나는 달랐지 나의 용기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날렵하게 그 철망을 기어올라 기어코 넘어가고 말았으니까.


그날 이후 우리들의 동거가 시작되었어. 나는 형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허술해 보이는 제리였지만 일단은 그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어. 모든 것이 낯설었으니까. 그때 나는 그저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기 고양이에 불과했으니 어쩔 수 없었지.


제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때론 그의 부드러운 그루밍도 받곤 했어.

그러나 제리의 텃세 때문일까? 자기가 먼저 이 집에 입양되었다는 것, 그리고 몇 개월 먼저 태어났다는 것을 이유로 형 노릇 하겠다는 제리가 늘 내 기분을 잡치게 했어. 왜 허구한 날 사사건건 참견하며 귀찮게 하는지 원~!! 게다가 엄마는 물론 누나, 형에게 배를 보이고 누워 온갖 애교를 떨면서 고양이 위신을 떨어뜨리는 모습이란~!!


엄마는 모든 고양이의 앞 발이 다 제리처럼 짧은 줄 알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낯설고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나?

또한 제리에 대한 첫사랑이 워낙 지극했기 때문에 왠지 나는 늘 겉도는 느낌이었어.

이 집에서 나의 존재는 뭘까?


나는 떠나온 엄마의 품을 그리며 꾹꾹이로 혼자 마음을 달래곤 했지. 참, 제리는 꾹꾹이를 모르더 군. 어떻게 고양이가 젖이 잘 나오도록 엄마 가슴을 누르는 꾹꾹이를 모르는지 의아했지만 제리에겐 엄마의 기억이 아예 없었어. 하긴 팔이 그렇게 짧으니 꾹꾹이를 제대로 배울 수도 없었겠지.

우리 둘은 어쩔 수 없이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렸지만 난 모든 것이 따분했어. 왠지 억울한 느낌뿐이었지. 가족들이 예쁘다며 나를 만지려 하는 것이 싫어 그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도 못 들은 척하며 햇볕 따뜻한 창가에서 낮잠을 즐기곤 했어.


점점 나의 몸이 자라나자 몇 개월 만에 나는 제리의 체구를 추월해서 키는 물론이고 길이도 훨씬 길어졌지. 그런 나를 이기려고, 형 체면을 지키겠다고 날마다 제리는 기를 썼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시간은 나의 편이었어.


“어이 제리 형, 이제 좀 그만하시지. 어차피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 아이 귀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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