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무법자 ㆍ 불효냥 보리

by 김경미

제리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경험한 나는 잘 몰랐지만 보리야말로 전형적인 고양이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다. 낯을 심하게 가려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았으며 집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상당히 독립적이었다.

길고 늘씬한 다리를 이용하여 서랍이나 방문을 여는 등 무엇이든 혼자 척척 해 나가고 심지어 사람 흉내를 내며 휴대폰이나 태블릿 PC를 터치할 정도로 영리했다.


보리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고양이는 앞발, 사람으로 치면 손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강아지들은 무엇이든 입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고양이는 싸움을 하거나 날 벌레를 잡을 때도 마치 권투선수가 팔을 휘두르듯 했다.


특히 보리는 제리로 인해 더욱 길게만 느껴지는 앞다리를 이용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뜯어 내고, 긁어 대기 일쑤였다. 한 마디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말썽꾼, 무법자였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하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고수했다.

때문에 우리는 벽 틈새마다 빈 상자를 이용, 빼곡히 막아 놓아야 했고 소파나 의자에도 보호대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분이 상하면 이 엄마에게도 서슴지 않고 냥냥 펀치를 날리는 불효냥이기도 했다.

털을 빗어 줄 때도 무엇인가 수틀린다 싶으면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러 나의 팔, 다리에는 보리 때문에 생긴 크고 작은 상처가 마를 날이 없었다.


“어휴 조그만 게 겁도 없어. 어디서 주먹질이야. 성질 같아서는 확~~~!!”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도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그저 철없는 고양이일 뿐인 걸!

하루는 거금을 들여 제리, 보리 정기 검진을 했다.

스케일링 후 마취에서 깨어나는데 서너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먼저 검진을 받은 보리는 깨어나자마자 이것이 과연 고양이 표정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험악한 인상으로 우리를 쏘아봤다. 언제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였다.

이튿날 똑같은 검진을 마친 제리는 어떠했을까?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반겼다.


매월 한 번 정도는 아이들 발톱을 깎아 주어야 한다. 그때마다 눈치 빠르게 침대 밑으로 숨어 발톱 깎기를 거부하는 보리를 위해 나와 딸과 아들, 세 명이 합심하여 작전하듯 임무를 수행했다.

힘센 아들이 보리를 수건으로 둘러 붙잡으면 나는 간식을 주며 입을 달랬고 순식간에 딸이 발톱을 깎아야 했다. 제리는? 딸 혼자 능숙하게 그저 3분이면 족했다.


보리가 어느 날인가 동물병원에서 발톱을 깎은 적이 있었는데 보리를 담당한 간호사가 나와 딸에게 말했다.


“어휴~ 어쩜 이렇게 순하고 말 잘 듣는 착한 고양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간호사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발톱을 내맡기고 있는 보리의 이중성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보리가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저렇게 예쁘고 여리게 생긴 녀석이 조금만 곁을 주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텐데 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보리의 모든 행동은 낯설었던 우리 집에서 저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낯선 집으로 입양되었으니 얼마나 적응하는데 힘들었으면 저러겠어!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어쩌겠니!”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더 이상 보리를 제리와 비교하여 평가하기보다는 가급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제8화 : 제리의 세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