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 보리의 세 번째 이야기

by 김경미

맞아! 그렇다니까! 이제야 엄마가 내 맘을 좀 알아주는군!

그동안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래,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리네.

그동안 모두가 나를 문제냥 취급했지만 나는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곳이 없었어.


나도 고양이 세계에 서열이 있다는 것쯤은 알아. 그래서 처음엔 제리를 진짜 형처럼 의지 했었지.

그러나 나도 자랄 만큼 자랐는데 제리가 사사건건 참견하는 게 귀찮은 것이 사실이었어.


그렇다고 제리를 대놓고 무시한 적은 없었어.

키가 자란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고양이의 본능인데 어쩌겠어? 제리 키에 맞춰 나까지 매일 방바닥에 뒹굴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제리를 내려다본 것이 잘못인가? 그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올려다볼 데가 어디 있다고.


내가 호기심이 좀 많은 것은 사실이지.

모든 게 내 눈에 신기해 보여서 자꾸 만지다 보면 집안이 망가지는 거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너무나 재미있는데 왜 엄마는 고양이 본능을 생각하지 않고 야단만 치는 걸까?

제리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뿐이라고, 그 짧은 다리로 무엇을 어쩌겠어!


나는 통제받는 게 싫어. 발톱 깎는 것도 싫다고. 나를 좀 내버려 두면 좋겠어.

나는 누군가 나를 만지는 것도 싫거든.

그 억센 손길. 내게 따뜻한 엄마품을 빼앗아간 그 손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자다 가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두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야. 제리가 내게 형 노릇 한답시고 내게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가끔씩 서열이 높다고 내게 그루밍해 줄 때면 언젠가 느껴본 엄마의 숨결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제리는 알고 있을까? 수시로 나를 기습해서 내 등을 물고 늘어지는 제리.

나는 그런 제리를 피해 다니지만, 내가 제리가 무서워서 도망 다니겠어?

힘으로 치자면 내 주먹 한방이면 제리쯤은 식은 죽 먹기지.

짧은 팔에 나보다 체구도 작은 제리를 그나마 형으로 대접하니까 도망 다니는 시늉을 하는 거라고.


뒤엉켜 싸울 때도 그래. 내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지.

그냥 적당히 엄살을 부리며 제리의 위신을 세워주는 거라니까. 제리가 그런 내 마음을 알겠냐고.


내 마음을 전부 털어놓으니 시원하네. 엄마가 나를 걱정해 주고 날마다 보살펴 주는 것도 알고 있어.

나도 엄마가 누구보다도 좋아. 부드럽게 속삭여주고 가끔씩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것도 좋지.

내가 허구한 날 틱틱거리는 것은 사실, 표현을 못하는 내 타고난 성격 때문인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마음으로는 좋은데 나도 모르게 행동은 오히려 반대로 하게 된다는 말이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고! 아이고 피곤해, 요즘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네.

캣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숨이 차니 말이야.

에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냥, 낮잠이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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