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십여 년 간의 공직생활 은퇴를 한 해 앞두고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화가 지망생이란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처받던 유년시절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준 미술이 내게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가능했다.
아홉 살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사립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나는 늘 등록금 독촉에 시달렸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내가 받은 유일한 칭찬은 미술시간뿐이었기에 상처투성이 외톨이였던 어린 내게 미술이 주는 의미는 매우 각별했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수채화가를 꿈꾸며 하루가 멀다 하고 학원에 나가 줄 긋기부터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은퇴를 앞둔 나이에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전 속도는 빨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가 되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팬데믹으로 학원조차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막막함만 더 해갔다.
은퇴 후 조그마한 오피스텔을 얻어 평소 좋아했던 기타 연습과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마련했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그나마 홀로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추어진 셈이었다. 학원을 못 가는 대신 그곳에서 거의 종일을 혼자 그림과 씨름했다.
집에서는 밤마다 고양이 제리와 보리의 모습을 드로잉 했다. 녀석들의 선명한 눈, 코, 입. 그리고 유연한 몸놀림을 여러 기법으로 그려 보곤 했다.
그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정식 수채화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듬해 난생처음 그룹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그림에 대한 조금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꾸준함에도 한계가 있는 것.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수시로 슬럼프가 찾아왔고 화가의 꿈은 더더욱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동안 즐겁기만 하던 그림 그리기가 갑자기 버겁게도 느껴졌고 점차 나태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온종일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종이와 물감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도전의식을 다시 깨워야 한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어떻게 다시 시작한 그림인데 예서 포기할 수는 없지.
무엇인가 나의 그림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때마침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모 미술단체에서 주관하는 공모전 공고를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전통도 있고 적절한 규모의 공모전이라는 생각에 난생처럼 공모전 도전을 결심했다.
선생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공모전 도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저 혼자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어떻게 그려야 할지 연습을 거듭하면서 공모전 준비에 매진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료를 찾고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수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어린 시절 뒤 뜰에 피어 있던 보라색 도라지 꽃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공들여 꽃 그림을 완성했지만 왠지 미흡한 듯하여 마음이 불안해 왔다.
결국 공모전 마감이 보름정도 남겨져 있을 때 한 작품을 더 그려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그려야 하지? 깊은 고민 끝에 갑자기 내가 일 년 가까이 드로잉 해 왔던 고양이 제리, 보리의 작품들이 떠 올랐다. 그래, 항상 나와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녀석들을 한 번 화폭에 담아보자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