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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Oct 11. 2022

“톰과 제리”의 추억


나에게는 ‘톰’과 함께 한 아련하고도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톰’이라고라~? 그렇다면 내가 ‘제리’였다는 의미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한 때 ‘제리’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톰과 제리”.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쉰 하고도 삼 년을 넘긴 중, 장년의 나이에 기타를 처음 배우며 결성했던 혼성 듀엣의 이름이다.


어느덧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나는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장기 교육파견 명령을 받게 되었다. 장기간 교육 파견이 누군가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십여 년 동안 아이 셋을 키우며 긴장을 풀 수 없는 고된 공직업무에 매여 있던 나에게는 약 1년간의 휴식기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교육 프로그램 중에는 특별활동으로 기타반이 편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부터 팝과 통기타 음악에 매료되어 언젠가 반드시 기타를 배우고자 했던 내게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거의 미친 듯이 기타에 몰입했다. 30여 명의 기타반 교육생 중 월등히 발전 속도가 빨랐는데 선생님이 하나를 알려주면 열 이상의 포크송, 팝송 악보를 찾아 기를 쓰고 연습하곤 했다.


기타 반 동기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기타를 만져 본 사람이 나 이외에 한 사람 더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을 이용, 강의실에서 기타와 씨름하고 있는데 강의실 뒤편에도 조용히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어? 듣기 좋은 멜로디? 대부분의 동기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음을 내지 못하건만 제법 들을 만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대학시절 그 유명한 대학가요제 출전까지 시도했던 경력이 있는 동기다.


그날 이후로 그 동기분을 포함, 몇몇함께 점심시간마다 강의실 앞 뒤에서 기타 연습을 하곤 했다.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가르쳐 주고 하는 가운데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나만큼이나 그 동기도 노래를 즐기는 사람이었기에 기타 연습을 넘어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그 동기분과 나는 듀엣으로 노래 부르며 서로의 노래에 화음을 넣어주었는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절묘하게 어울려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이후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음악에 빠져 들었다. 오십을 훨씬 넘긴 나이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기쁨, 중창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 혼성 듀엣 출신의 기타 선생님이 모든 노래에 즉석에서 화음을 넣어 주실 때 너무나 대단해 보였는데 기타를 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그것이 가능하게 됨을 경험하였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혼자 부르는 노래보다 누군가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낼 때의 그 기쁨과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매일매일 열정을 다 해 기타, 노래 연습을 했고 모든 교육원 행사 시마다 듀엣으로 함께 노래를 하곤 했다.


우리는 주로 ‘트윈 폴리오’나 미국의 혼성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교육원 전체 행사를 앞둔 어느 날 그 동기이 악보도 없이 가사 하나를 덜렁 가지고 왔다. ‘피터 폴 앤 메리’의 “Lemon tree”라는 곡의 가사였다. 대학 때 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연습했던 곡이라며 그 자리에서 코드를 적어 함께 연습했는데 이후 이 노래를 부르는 우리 모습을 보고 기타 선생님이 즉석에서 지어 준 듀엣 이름이 바로 “톰과 제리”였다.



우리는 점심시간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소음을 피하기 위해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복도 끝에 만들어 놓은 창고를 이용하면서까지 노래 연습을 했고 교육원 출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하여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해 연말 교육을 마무리하며 성대한 행사를 했을 때도 무대에 올라 트윈 폴리오의  “웨딩케잌”을 함께 부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었다.


교육 종료를 앞두고는 아쉬움에 듀엣으로 노래한 CD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 CD를 어디에 두었는지 조차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지만 10년 전 그날의 추억들은 내 인생 가운데 하나의 분기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이 셋을 키우며 긴장된 공직생활을 해 나가던 그저 그런 평범한 삶에서 더 이상 기타와 노래를 빼놓고는 나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음악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끝난 뒤 “톰과 제리”어떻게 되었을까?


당시만 해도 교육을 마친 후에도 함께 노래하며 봉사활동이라도 하자는 등의 꿈을 꾸었지만 막상 업무 현장으로 복귀한 우리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고 각자 지방을 돌며 근무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한참 입시에 매달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거나 오십이 훨씬 넘은 중, 장년의 주부가 가정일을 뒤로하고 노래하겠다고 기타를 메고 나 다닐 수야 없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자연스럽게 “톰과 제리”는 해체되었고 지금은 추억만 동그마니 남아 있지만 내게 있어 10년 전 듀엣으로 노래했던 추억은 내 인생에 손꼽을 만큼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도 기타와 노래를 떠나지 못했고 결국 은퇴 후에도 기타 레슨을 하고 있으며 여성 트리오 “F3”를 만들어 계속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아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망설임 없이 ‘제리’라고 이름 짓고 부른 것도 생각해 보면 내가 ‘제리’라고 불리던 그 시절이 아직까지 마음 가운데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벌써 오랜 세월 동안 그 동기과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불현듯 기타와 노래에 미쳐 지내던 나의 오십 대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 보세요 톰~!! 잘 지내고 계시지요? 아직도 기타와 노래에 빠져 살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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