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팬데믹의 봄, 새 식구들을 품다

by 김경미

2020년 봄, 삼십여 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나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하루하루 의욕이 없고 울적함만 더해갔다. 은퇴 일 년 전부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더이상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새로 시작한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가만히 있자 하니 답답했고, 거기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의 관계마저 삐걱거리며 마음은 더 우울하기만 했다. 그저 가끔씩 평소 좋아하던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일 외에는 말 그대로 의욕제로의 방전 상태가 되었다. 그 무렵 딸과 막내아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엄마, 우리 고양이를 키워보는 게 어떨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단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릴 적 한밤중 동네 어귀에서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그 소리는 나에게 공포였고, 그 공포는 자연스럽게 ‘고양이는 무섭다’라는 편견으로 굳어졌다.


“안 돼. 고양이는 절대 안 돼.”


그런데도 딸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화창한 주말, 예고도 없이 예쁜 검정 얼룩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끝까지 빠져드는 열정적인 성격이다. 그것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작은 상자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강아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제니’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제니와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방학기간 중 미술 숙제에는 당연히 제니가 모델로 등장했었다.


하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어느 겨울밤, 제니는 누군가가 뿌려 놓은 독약을 먹고 다시 오지 못할 길로 떠나버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절망과 슬픔이 어떤 것인 줄 알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었다.


“다시는 동물 따위는 절대로 키우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그날, 난생처음 마주한 아기 고양이에게 나는 그만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놀랍도록 섬세한 몸놀림과 어여쁜 자태,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선이 또렷한 눈ㆍ코 그리고 입. 녀석이 어설프게 뛰고, 미끄러지고, 몸을 뒤집어 배를 드러내는 애교를 부리며 나를 빤히 쳐다볼 때면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결혼도 안 한 네가 왜 엄마니? 내가 엄마지. 너희들은 그냥 누나와 형이야”


입양을 반대했던 내가 딸아이를 제치고 엄마 집사 역할을 자처하며 아기 고양이에게 ‘제리’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제리는 새벽이면 잠자는 내 코 앞까지 기어올라 와 맘마를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아주 귀여운 개냥이였다. 신기하게도 은퇴 후 시달리던 우울증과 무기력은 자취를 감췄고 팬데믹 한가운데였지만 우리 집에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아기 고양이 제리 때문이었다.


제리가 입양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의 2세를 한 번도 못 본다는 것이 왠지 아쉽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과 상의 끝에 딱 한 번만 2세를 보자는 조건으로 암컷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 달 만에 제리에 이어 노랑 얼룩 고양이 “보리”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보리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제리 아기 때보다도 훨씬 작았다. 어른 손바닥에 간신히 올라갈까 말까 한 크기였고, 목소리도 여리고 가냘팠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에고~!! 천생 여자네 여자~!!”


그런데 성질만은 반대였다. 첫 만남부터 하악질을 해대며 위협했고, 자기에게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몸집은 작은데 성격만큼은 대형 맹수만큼이나 사나웠다. 어디든 기어이 올라가려 들었고, 지는 걸 모르는 타입이었다.


보리를 입양한 지 한 달쯤 지나 건강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원장 선생님은 왠지 안경너머로 보리와 차트를 번갈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셔요? 어디가 좋지 않은 가요?”


딸과 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보리… 여자가 아니라 남자네요, 남자. 수컷~~!!”


“예에~~??”


순간 병원의 공기가 멈추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너무 어려 생식기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모두가 착각했던 것이다. 결국 제리와 보리는 2세 계획은커녕 순서대로 차례차례 중성화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 집에 활력과 즐거움을 주고 있는 제리와 보리의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두 녀석이 노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거의 매일 작은 스케치북에 녀석들을 번갈아 가며 드로잉 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이 두 녀석들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 우리의 아기 고양이 제리, 보리가 어떻게 내 운명을 바꾸어 주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하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끝까지 이 제리ㆍ보리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할 것이다.



< 아기 고양이 제리, 보리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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