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반하다
제리가 입양된 후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평소 크게 대화가 없었던 가족들이 서로간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아졌다는 것이다. 몇 달 전 남편이 직장 근처인 여주로 이사, 텃밭을 가꾸며 살게 되어 허전했던 집 안에 다시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귀가하면 방문을 닫고 들어가 식사시간이 되어서야 얼굴을 내밀곤 했던 아이들이 달라졌다.
제리가 우리 가족이 된 뒤 딸과 아들, 그리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게 되었다.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리는 사람을 무척 잘 따르는 개냥이과 고양이였다. 처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혀 낯 선 기색 없이 온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호기심 많은 녀석은 지금도 온종일 가만히 있지 않고 수시로 놀아 달라 보채며 배를 드러내고 애교를 부리곤 한다. 가족들은 제리가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기 위해 저마다 방문을 열어 놓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방에 좀 더 머물기를 바랐다.
이전에는 각자의 태블릿 PC가 있으니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함께 TV를 보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리가 오고 나서는 수시로 거실에 함께 모여 앉아 제리의 재롱을 보곤 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카톡을 나누며 제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다.
제리는 입양 직후에는 밤마다 딸의 머리맡 베개를 침대 삼아 잠들었다. 워낙 체구가 작고 가벼웠으므로 딸의 목에서 마치 목도리가 된 포즈로 잠들기도 했다. 딸이 제리를 데려왔고 많은 것을 챙겨 주니 딸을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매일 새벽, 교회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며 잠든 제리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딸이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남편이 여주로 이사한 뒤 디지털 피아노를 새로 들여놓고 기타와 피아노를 치며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럼에도 남편의 부재에 따른 허전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혼자만의 자유로움이 크기도 했지만 약간의 적적함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에 취해 있던 나는 침대 아래쪽에서 아주 작은 진동을 감지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 제리가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발 밑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그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마치 내가 제리에게 간택이라도 된 것 같은 기쁨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제리는 밤마다 이 방, 저 방을 번갈아 다니며 잠들어 우리 가족 모두를 ‘제리 바라기’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제리를 만나기 전에는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제리를 만난 후 마치 갓난아기 대하듯 돌보아 주다 보니 어느덧 나를 진짜 엄마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제리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내 다리에 매달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야옹야옹~” 하며 무엇인가 간절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서 신나게 장난감 있는 곳으로 먼저 내달리는 것이었다. 누나와 형 하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자기와 놀아 달라는 의사표시였다.
제리는 매일 아침부터 내게 야옹 대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어쩌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무슨 놀이를 할 것인가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신이 나서 달려왔다.
나는 그런 제리 덕분에 예순을 넘긴 나이에 어린아이들을 키우던 30여 년 전의 젊은 엄마시절로 되돌아간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