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근교나 국내여행도 좋아하고, 해외여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행에서만큼은 잔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매월 저금을 하며 한 번 여행을 갈 때 저금한 경비 내에서 풍족하게 쓰는 편이다.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했나 생각해 봤다.
추억해 보면 흑백으로 떠오르는 어린 시절, 섬에 살던 그 시절에 어린 난 세상이 그 작은 섬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씩 30분 배 타고 나갔던 육지도 그 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
그래서 아직도 지리에 약한가 보다.
넓은 세상을 처음 발 담근 대학생 때, 지나갈 청춘이 아까워 더 넓게 경험해 보자 선택한 게 대만 여행이었다.
차이나 타운도 가 본 적 없던 내가 말도 잘 안 통하는 다른 나라에서 며칠 있었던 건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 박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깨달았다고 하기엔 좀 웃긴데, 중국어를 전혀 못 하던 내가 무사히 여행을 즐기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스스로가 대견하고,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사람과 부딪히는? 함께하는 직업이라 그런가 한 번씩 상대방이 ‘사람’ 그 자체가 아닌 ‘캐릭터’로 느껴질 때가 있다. 반복적으로 오래 지독하게 치이면 더 그런 것 같다. 가장 그러지 않아야 할 직업임에도 때때로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왜 이러지.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없었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에 새겨두려고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어렵다.
웃기지만,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일상에서 벗어나 외국어밖에 들리지 않는 해외에서 ‘나’와 ‘상대’의 개념이 더 확실해진다.
지하철에 앉아 가만히 반대편 사람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도 나처럼 가족도 있고, 가끔은 불우했을 학창 시절도 있고, 정말 행복했던 기억도 있고, 연락할 친구도 있고, 가야 할 직장이 있겠지? 나처럼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겠지?’ 생각을 한다.
단순히 치였던 일상에서 벗어난 완벽한 오프(off)라서 그런 건지, 여행이 주는 깨달음인지는 모르겠다.
친구들과 직업병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장난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MBTI가 바뀌었다. F> T 비율이 월등했는데 요즘에는 비등비등하다. 나는 이걸 무뎌졌다고 표현한다.
확실한 건,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진정한 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