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망졸망 김치를 담은 병과 유리통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고 싶어 진다. 그저께 아침에 시내 재래시장에 가서 배추 네 포기, 무 한 개, 순무 한 단, 파 세 묶음을 사다가 김치를 담갔다. 밤에 세 통의 배추를 반으로 갈라서 소금을 넉넉하게 뿌려 절여두고 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순무김치부터 시작해서 모두 네 종류를 김치를 담갔다.
제일 먼저 담근 김치는 순무김치다. 순무는 무청을 다 잘라내지 않고 먹기 좋을 만큼 잘라서 소금에 절여 두었더니 알잉 작은 무도 청도 제법 잘 절여졌다. 고구마 녹말가루로 풀을 쑤어 식힌 다음 순무에 서너 숟가락을 넣고, 곱게 다진 앤초비 두 조각, 다진 마늘, 파, 생강도 즙을 내서 넣고 고춧가루로 버무리니 김치 담그는 냄새가 난다. 여름에 갓 버무린 열무김치 냄새가 난다. 파 마늘이 다른 양념과 섞여 내는 냄새. 김치를 담을 때면 난 늘 엄마 옆에서 잔 시중을 들었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다 버무린 김치 한쪽을 입에 넣어주면 우물거리며 먹었었다. 어려선 갓 갓 버무린 김치가 싫었다. 어석이는 배추에 마늘과 고춧가루가 어우러져 텁텁한 듯하면서 맵기도 하고 짜기도 했다. 난 햇 김치가 맛이 없었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은 방금 버무린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무청도 들어서 먹어보고 무청에 매달린 무도 집어서 먹어본다. 짭짜름하고 매콤한 양념과 달콤한 무맛이 느껴진다. 여러 번 김치는 담가봤지만 순무는 처음이다.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찬밥에 얹어 볼이 미어질 것처럼 먹으면 너무 맛있겠다 싶으니 입안에서 침이 나온다. 잼병에 담아서 꼮꼭 눌러 두고 절인 배추를 한 장 뜯어 덮어둔다. 김치가 익으면서 국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은 색깔이 희끄므레해지면서 맛도 없기 때문에 김치 윗부분을 잘 여며두어야 한다. 엄마는 김장을 할 때면 절인 배추조가리를 김치하고 남은 양념에 들들 버무려 김치 위에 얹어두곤 하셨다. 그 배추조가리들을 우거지라고 불렀는데 깊은 겨울에 김장독을 헐 때마다 그것조차 버리기 아까웠던 엄마는 우거지를 물에 헹구어서 된장을 넣고 끓여내시곤 했다. 그 우거지를 밥에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나도 배추 조가리로 엄마 흉내를 내 본다.
김치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배추를 절이는 일이다. 배추의 간이 김치의 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어떤 때에는 간이 맞고 어떤 때에는 싱겁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간을 잘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배추는 제대로 절지 않았다. 조금 더 놓아두기로 한다. 덜 절은 배추는 소금물에 잠기도록 아래쪽으로 묻어두고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커피에 우유를 데워 넣고 밤 크림을 식빵에 발라서 아침을 먹는다.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와 갓 만든 밤 크림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집안에 있는 병들과, 유리 용기 두 개와 플라스틱 통 찾아내 씻고 물기를 없애고 즐비하게 늘어놓으니 오늘 집안에 뭔 일 나는 것 같다.
이번에는 포기김치를 하기로 한다. 무를 씻어 채를 썰고 여기에 양념을 넣고 잘 버무린다. 고춧가루가 풀어지면서 색깔이 나기 시작한다. 빨간 색깔을 보니 제법 흉내를 낸 것 같다.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낸다. 김장을 한다며 호들갑도 떨어본다. 사진을 보내고 문자를 적는 사이 김장 때의 풍경이 휙 떠오른다.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던 배추, 무와 양념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 냄새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여러 얼굴들과 발자국 소리, 그릇 부딫는 소리와 한꺼번에 말할 때 왁자함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이렇게 많은 냄새와 소리가 살고 있었나. 이제 무채 색깔이며 냄새가 엄마가 하던 것과 비슷하다. 김치를 눈과 코로 하려 하다니... 무채가 절여져서 점점 그릇 아래로 가라앉고 이제 배추를 씻어 물기를 뺀다. 세 포기라지만 제법 많다. 지금까지 한 김치중 가장 많은 양이다. 반포기의 배추에 무채를 묻혀가며 속을 싼다. 배춧잎 하나하나 사이에 무채를 넣어 가니 제법 많은 무채가 들어간다. 배추 두 포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없다. 배추 한 포기를 싸고 나니 속이 다 떨어졌다. 김치값이 쌀 수가 없는 이유를 알 거 같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해진다. 엄마가 주신 고춧가루, 언니가 준 고춧가루가 다 새롭고 귀하다. 유리그릇에 포기김치를 정성껏 담고 기념촬영을 한다. 김치는 여러 번 해 봤지만 포기김치는 처음이니 대견하기도 해서 여러 컷을 정성 들여 찍어준다.
남은 배추 두 포기로는 맛김치와 남편이 좋아하는 고춧가루 없이 하는 흰 김치를 한다. 백김치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이 백김치는 너무 창백하다. 당근을 채쳐서 넣어주니 조금 낫다. 한 조각 남겨둔 무도 나박 썰기 해서 서너 개 넣어본다. 그대로 잠깐 간이 배이게 두고 나머지 배추를 썰어 맛김치를 담근다. 고춧가루, 앤초비, 파, 마늘, 생강, 고구마 녹말풀, 나박 썰기 한 무 등을 넣고 버무린다. 이 냄새다. 풋풋하면서 자극적인 풋김치 냄새가 난다. 김장 때면 하루 종일 나던 김치 냄새다. 백김치는 두 개의 그릇에, 맛김치도 잼병이며 반찬 통에 되는 대로 담는다. 시누 남편이 보낸 병에도 담아서 보내야 한다. 각각의 김치에 배추조가리를 모아서 얹는다. 김장독마다 깨끗한 돌을 얹어 놓으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김치를 담그는 것에도 엄마는 늘 함께 한다.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엄마는 내 곁에 있다.
올망졸망 귀여운 김장이 끝난다. 열한 시가 넘었다. 모두 일곱 개의 병, 통, 그릇에 담아둔 김치사진을 찍어 올린다. 친구가 신혼살림 같다며 귀엽단다. 꼭 먹어야만 하는 김치는 아니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게 하는 것이 또 김치다. 남편은 점점 한식을 먹겠다고 더 자주 찾고 이제 그가 먹는 백김치의 양도 꽤 된다. 이제는 백김치와 맛김치를 일대일로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김치가 든 그릇마다 뚜껑을 잘 덮어 한 곳에 모아두니 곳간에 양식을 쌓아둔 듯, 보너스와 월급을 같이 받은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린다. 김치통을 계속 들여다보고 자꾸 확인하고 싶다. 얌전하게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통들을 괜히 열어보고 들어 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밤이 지나고 가장 먼저 김치통을 확인한다. 제법 물이 생겨 배추가 잠겨간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본다. 왠지 더 시큼해졌을 것도 같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맛이 들었을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아래층에 사는 소냐 집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자주 나는데 자기는 남편과 싸운 날이나, 아이들이 속상하게 한 날이면 달콤한 케이크를 굽는단다. 난 왜 내가 불현듯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장을 봐서 김치도 담그고, 번거로운 갈비탕을 만들까 했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는 어느새 나한테 소환되어 내 옆에서 김치 간도 봐주고, 콩물 내기도 봐 주시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