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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Feb 03. 2022

할머니, 엄마, 콩나물

2021 11 20

 선물로 콩나물을 받았다. 콩나물이 무슨 선물이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콩나물은 귀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요리수업에 자주 오시는 분인데 "콩나물은 기르기 힘들다면서요?" 하며 콩나물 봉지를 내밀었다. 한겹 비닐봉지에 담겨진 콩나물을 받게 되자 마음이 금방 뭉클해졌다. 


 녹두를 불려 껍질이 갈라질 즈음 체에 받혀 물을 자주 뿌려주면 쑥쑥 잘 자라는 숙주나물. 한 여름에는 3일 만에 다 자라고 겨울철에는 여름의 두 배는 걸린다. 기르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해 먹는 재미 또한 솔솔 해서 자주 기르는 나물이다. 어느새 친구들에게도 전파해서 홍콩 사는 친구도 기르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길렀다고 한다.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너무 길게 길러서 잎이 나오기도 하고, 물을 주지 않아 말라비틀어졌다고도 했다. 숙주나물은 쉽지만 콩나물은 금방 상해서 한 번 해보고는 더 이상 길러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먹었다. 겨울이면 할머니는 안방 윗목 한 구석에 불린 콩을 시루에 안치고 시루 밑에 'ㅅ '자 모양의 삼발이를 걸쳐두고 콩나물을 길러내셨다. 삼베로 된 천을 시루 위에  덮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삼발이 밑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떠서 끼얹어 주면 연노랑 콩에서 순이 터나왔다. 그 뾰족하고 흰 순들은 어느새 물을 찾아 아래쪽으로 한바퀴 회전해서 나란히 자라기 시작했다. 콩 순들은 콩 대가리를 위로 위로 밀어 올리며 쭉쭉 길게 자랐다. 콩이 작아야 기르기 쉬웠다. 그래서 알이 잔 콩이 좋은데, 엄마는 알이 작은 쥐눈이 콩은 수확이 적어 잘 심지 않았다. 할머니는 집에 있는 흰콩이나 검은콩으로도 잘 기르셨다. 다 자란 콩나물의 콩껍질을 벗기는 일은 늘 나처럼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의 몫이었다. 알이 굵은 콩은 자랄 때 잘 상하기도 해서 콩나물을 손질하다 보면 상한 콩대가리가 물컹하게 만져지기도 하고 역한 냄새가 손에 배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콩나물은 도시에서만큼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가리도 굵고 줄기도 거센 콩나물을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 파, 마늘을 넣고 무쳐내 놓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었다. 이런 콩나물은 접시에서도 사납게 뻗쳤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집어먹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가면서 밀어 넣어야 했다. 네 명이나 되던 어린 내 형제들은 둥근 밥상위로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먹어댔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엄마는 콩나물을 더 쉽고 간편하게 기르셨다. 우유팩 밑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고 콩을 안친 다음 물을 자주 주면 그 안에서 콩나물이 자랐다. 싱크대 한 편에 놓아두면 물 주기도 편했다. 대신 많은 양은 어려워서 한두 번 국이나 끓여 먹을 정도였다. 많이 자라지도 못해서 겨우 콩 대가리만큼이나 길이가 자란 어린 콩나물을 뽑아서 국간장에 국을 끓이면 시원하면서도 고소했다. 갓 지어서 퍼 담은 밥을 어린 콩나물국에 말아서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겨울 김장김치에 매콤 달콤하게 맛이 들고, 방학이 코앞이었던 겨울날 아침에 이런 아침을 먹고 나면 세상이 다 온순하고 나를 위해 웃는 것 같았다. 


 대학을 다니며 순대며 떡볶이, 쫄면 등 사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법을 알면서 콩나물 밥도 알게 되었다. 밥에 콩나물, 간장 양념과 다진 쇠고기를 넣고 비벼먹는 콩나물 밥도 별미였다. 살면서 상전벽해를 경험한 엄마도 이제는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가 도시로 간 게 아니라 살던 곳이 도시로 변한 것인데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왔다. 엄마는 이제 숙주나물도 콩나물도 기르지 않는다. 엄마 집에서 지낼 때마다 난 두부와 콩나물을 가장 먼저 사는데, 두부는 그저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해도 무관심하지만 콩나물로는 콩나물밥을 해 주신다. 콩나물을 씻어서 냄비에 안친 다음 그 위에 쌀을 안치고 밥을 지어야 콩나물 맛이 밥에 배어 맛이 좋다. 밥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게 관건이다. 다진 소고기를 따로 볶고, 간장양념장을 만들어서, 다 지어진 밥에 얹어 썩썩 비벼서 먹으면 콩나물 향이 나면서 아삭아삭 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슈퍼에서 사는 콩나물은  어려서 먹던 콩나물보다 연하고 부드럽지만 콩대가리를 씹을 때 맛보던 그 고소한 맛은 없어서 엄마는 늘 아쉬워하시곤 한다. 


 귀한 콩나물을 선물로 받았으니 난 바로 콩나물 밥이 먹고 싶어졌다. 콩나물은 좋아하지만 콩나물 밥은 아직 못 먹어본 남편을 설득하려고 여러 번 콩나물밥을 들이밀어 본다.

'오늘 점심 콩나물밥 어때?' 

'어떤 건데'

'밥에 양념이 된 콩나물을 얹어서 간장소스에 비벼서 먹는 거야. 다진 쇠고기 볶음과 참기를 조금 넣고'

'...'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나 시원한 대답이 없다. 새로운 음식에 관대하지 않은 남편이다. 남편은 팬에 마늘과 올리브유를 넣고 볶다가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콩나물을 좋아한다. 단 둘이서만 먹는 점심. 난 콩나물밥을 포기하고 콩나물 볶음으로 간다. 이렇게 먹는 콩나물도 별미다. 팬에서 살짝만 순이 죽은 콩나물은 씹는 맛도 일품이지만 먹고 나면 입안을 깨끗하게 남겨줘서 따로 와인이 필요 없을 지경이다. 콩나물이 익자마자 남편은 젓가락을 들고 와 콩나물을 먹기 시작한다. 어느새 팬에 가득하던 콩나물 볶음이 다 사라지고 팬에 서 너 가닥의 콩나물만 남았다. 


 생각지도 않게 받은 콩나물 한 봉지로 오랜만에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식사시간을 가졌다. 음식은 그런 건가 보다. 맛으로야 콩나물보다 더 좋은 게 얼마든지 있겠지만 할머니와 엄마를 이렇게 가깝게, 자세하게 불러다 줄 음식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거다. 한 봉지로 오랜만에 할머니를, 젊은 시절의 엄마를 기억해서 더 맛있었던 콩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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