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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Feb 01. 2022

아침에

2022년 02월 01일

  밤새 윙윙 바람소리가 나더니 아침엔 햇살이 제법 따스하다. 안개 같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나서 바람이 일고, 밤사이에 구름은 밀려나고 해가 났다. 등 위로 내리는 햇살로 몸을 데우고 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거 같다. 꿈에선 살던 아파트를 잃어버려 집에서 쫓겨 나가게 된 친구를 만났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서 그 친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꿈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전화기 화면을 여니 눈이 부시다. 설날 아침인데도 딱 두 개의 메시지만 와있다.  하나는 조카가 보낸 사진이고 하나는 혼자 살고 있는 친구가 보낸 설날 동영상이다. 영상 톡을 하자던 조카는 사진만 남겨두고 나갔고, 친구는 설날 동영상만 덜렁 보내 놨다. 따뜻해서 나오기 싫은 침대를 빠져나와 슬리퍼에 발을 밀어 넣고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받는 둥 마는 둥, 하거나 말거나. 작은 녀석이 그래도 와서 머리를 내어준다.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 속으로 손을 넣고 잠시 쓰다듬어 준다. 녀석이 머리를 내 손 쪽으로 밀며 맞 받아준다. 이 작은 고양이의 목적은 베란다로 나가는 것. 해는 났지만 바람이 불어 쌀쌀한 날씨다. 창문을 열어주니 코를 허공에 올리고 벌름벌름 냄새를 맡듯이 공기를 음미한다. 그러고는 선뜻 나가질 않고 그 앞에 주저앉는다. 겨우 고양이가 지나갈 만큼만 문을 열었는데도 찬바람이 들어와서 난 싫다. 그렇다고 고양이 앞에서 창문을 닫기에는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난 바삐 창문을 닫고 반대쪽으로 가서 다른 창문을 열어준다. 마치 더 좋은 거라도 주는 것처럼 난 의기양양하다. 아까의 창문은 길이가 길어서 고양이가 코를 내밀고 날씨를 확인하기 쉽지만 이번에 연 창문은 허리 높이라서 창턱으로 올라서야지만 공기를 확인할 수 있다. 고양이는 창턱 아래에서 상황을 파악해 본다.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높게 들어 가능한 한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 모습이 퍽이나 우아하다. 난 고양이를 설득하려고 여닫이 창문을 더 앞으로 당겨 연다. 창 유리문 뒤로는 스크린이 겨우 고양이가 지나갈 만한 높이로 올려져 있다. 작은 녀석 구름이가 창턱으로 상큼 뛰어올라 바깥으로 나가는 걸 보고 3미터 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큰 녀석 먼지도 창문으로 다가온다. 

  잠깐 두 녀석을 놔두고 조카와 채팅을 한다. 조카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고 한다. 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가 높아지면서 내 그림자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고 또 길이도 길어져 있다. 남편은 아직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집안 공기가 차가워졌다. 두 녀석이 다 나갔으려니 하며 창문을 여며두려고 가는데 소파 위에 앞발을 포개고 앉아 있는 큰 녀석이 보인다. 이 녀석은 추워서 안 나간 모양이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데 난 종종 잊어버린다. 두 녀석이 서로 다르다는 걸. 두 녀석은 두 마리의 고양이가 얼마큼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듯 서로 다른 동선, 다른 식성, 다른 놀이, 다른 잠자리로 설명하는 데 난 늘 두 녀석을 묶어서 생각한다. 밥도 동시에 줘야 할 것 같고, 놀이도 동시에 놀아줘야 할 것 같고, 옥상에도 함께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 늘 내 마음이 번거롭다. 막상 이 녀석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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