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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Jan 24. 2022

일요일에 성당에 가려다가 생긴 일

2021 11 15

 9월이었나 보다. 아는 분께 다니는 성당의 주소를 받아두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리라 생각하며 가지고 있다가 자주 중첩되는 인연들이 성당 하고 연결되어 있어, 드디어 일요일인 어제 아침에 성당을 간다고 나섰다. 아주 약간 비가 내릴 듯 말 듯하는 날씨였는데 조금쯤 걷는 것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 우리 집에서 기차로 16분 후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어서 8분, 버스로 6 정거장, 다시 걸어서 19분을 찍는다. 기차에서는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남자와 늘 한 정거장 늦게 알려주는 도착역 안내 방송을 같이 흉보며 킬킬거렸다. 품질 좋아 보이는 재킷에 흰 셔츠를 받쳐 입은 그는 이탈리아에서 40년을 살아서 이제 자기는 독일인이 아니라며  이런 실수 투성이 기차 방송에는 익숙하다며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이제 중년의 여자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임에도 난 그가 훨씬 더 나이가 든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내려서 8분을 걷고 구글이 알려준 번호의 버스를 타고 6 정거장을 지난 다음 내린다. 여기가 로마가 맞나 싶을 만큼 한적하고 도시답지 않은 곳이 나타난다. 뭐 이런 곳에 성당이 있누? 투덜대며 구글을 따라 가는데 남편의 전화가 온다. 어디까지 갔고 얼마큼 남았는지, 무슨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전화다. 그러면서 몇 시에 집으로 돌아올 건지, 점심은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다.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서 얼버무려 대답하고 끊는다. 전화받느라 지도를 잘 못 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돌아가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구글만이 진리는 아닐진대 구글에 남아있으려고 애쓰는 나를 보며 좀 우습다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모르는 동네이니 구글도 의지가 된다. 시간은 이제 열 한 시대로 들어가고 나는 길을 계속 따라 걷는다. 보행자 도로가 사라지고, 빌라촌이 나타나고, 난 누가 봐도 이 동네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계속 걷는다. 신앙심이 갑자기라도 생긴 걸까?  


 성당에 가려던 이유는 신앙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하고 약속이 되어 있거나, 무엇을 할 수가 있어서도 아니다. 내 동포들의 생태와 나의 생태가 이 성당을 매개로 만나질 것 같아서 가게 된 거다. 내 동포들도 나처럼 이방인들의 세상에서 맘이 불편하고 서러움을 겪기에 이렇게 성당이나 교회를 세워두고, 그 안으로 일주일에 하루쯤 피난을 가는 거라고 믿은 거다. 나는 용맹하게 그들과 나는 다를 거라고 스스로 나를 쥐어박아가며, 나를 치켜세워가며 수 년을 살았다. 이제 나도 지치고 피난을 가고 싶어졌던 거다. 구태하고 퇴보적인 행태라고 교회를 그다지도 기피하던 내가 비빌 언덕을 찾아야 했던 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온통 평평하고 가끔 웅덩이도 있는 이곳에서 혼자 길을 간다는 건 보통의 용기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이제는 인정하게 된 거다. 꽤 걸어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쯤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하 여기 사람들은 이 시간에서야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걷는데 누군가 나를 반갑게 부른다. 한글학교 조 샘이다. 언제나 밝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주변을 환하게 하는 우리 학교 신참교사다. 차를 세우고 반갑게 인사하며 미사가 이제 끝나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내가 너무 늦게 온 거다. 아니 사실은 잘 맞춰온 거다.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온 건 아니니까. 인사를 나누는데 다른 쪽에서 또 나를 부른다. 박샘과 그의 남편, 그리고 손 교수다.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여간 기쁜 게 아니다. 다시 나는 왜 내가 거기에서 발견되었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그들은 미사가 이미 끝났으니 더이상 성당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망연해진 나는 그래도 성당이라도 보고 가련다고 작별인사를 하니 그냥 자기들과 같이 묻어서 가자고 한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니 함께 가자고. 변명도 옹색하고 돌아가는 길도 불편하고 이래저래 그러자 하고 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인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식당에 도착했다. 중국식당이다. 남편에게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을 거라고 전화를 걸어 얘기하니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한다. 이미 여러 대의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있어 식당은 제법 버글 댄다. 모두 네 개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고 난 덤으로 추가된 사람임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마침 오늘이 바티칸 대사의 부임 1주기라 대사와 대사 부인도 와 있다. 반가워하는 대사 부인하고도 인사를 나누고 주변 사람들을 살펴본다. 가족단위의 젊은 부부와 아이들, 로마에서 꽤 오래 살았을 것 같은 중년의 남자들, 젊은 청년들, 나처럼 혼자인 사람도 여럿 보인다. 비교적 밝고 기대가 있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한글학교 조 샘도 아들과 함께다. 서로가 가족인 것 같이 친근하고 다정한 사람들 속에서 밥에 든 모래알처럼 튕겨져 나가는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가벼운 이야기 속으로 나도 들어가 본다. 박샘의 여행 이야기, 손 교수의 휴가 이야기가 주다. 요리의 명인처럼 나를 소개하는 사람들 속에 불편하게 앉아있는 내가 보인다. 늘 같은 요리가 나오고 특별하게 맛있지고 맛없지도 않은 음식들이 순서대로 나오고, 순서대로 먹고, 이러저러한 화제를 꺼내 테이블을 활기차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사 부인은 분주하다. 사교계의 여왕은 아닌 것 같은 모습이다. 어쩌면 그녀도 이런 환경에 지쳐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어쩐지 그녀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여기서 나의 태도는 중요하다. 난 아주 아주 무난하고 그저 평범한 이미지를 남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난 조금 주눅 들어 있기도 하다. 이미 자기 집 안마당에 있는 이 사람들과 남의 동네에 처음 온 내가 섞이려면 한 참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디저트로 밀레폴리에가 나오고, 대사부부는 촛불을 끈다. 모두들 즐겁게 케이크를 잘라서 먹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든 생각은 이 자리에 이렇게 끌려 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거다. 벌써부터 자매님이라고 나를 호칭하는 신부는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관찰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인가 보다. 그의 비즈니스 능력도 보통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의 눈에 나의 어설픈 비즈니스가 안 보일 리가 없다. 내가 밥 한 그릇만 축내는 사람이 될 건지. 우리가 비즈니스 동반자가 될 건지는 서로 조금 두고 볼일이다. 


 비즈니스를 위해 생각해낸 성당이기도 하지만 난 어쩌면 여기서 작은 안식을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다만 벌써부터 다과에 디저트를 준비해야 할 거라는 언질이 있으니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좀처럼 기다려주지 않는, 니 식구 내식구 가르기에 이력이 난 이 사람들 속에 내가 중립적인 위치를 얼마 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섞여있어도 내 냄새를 묻어주고, 내 색깔을 알아차리지 않아 주는 이 집단에서 난 잠시 동면 같은 시기를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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