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선미 Mar 03. 2022

안녕 비코,

결국 비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어제 아침에 들었다. 지난 28일이었다고 전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엄마는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그 전날 저녁에도 늘 하듯이 저녁기도를 하시는 엄마 앞에 앉아 기도를 같이 끝내고 늘 그렇듯이 아홉 시가 넘어 밖으로 나갔던 고양이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는 아침에 고양이가 창문 앞에 있을 거라 믿고 기다렸는데 기척이 없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그 궁금함 속에 불현듯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불길함을 느끼셨으리라. 아침을 다 먹도록 고양이가 기척이 없자 엄마는 서둘러 나가서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고양이집에 고양이는 없었다. 고양이는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이미 몸이 굳어버린 녀석을 들어 올릴 때 번쩍 들리던 느낌을 엄마는 오래도록 느끼시리라. 고양이는 온몸에 상처가 나있었다고 했다. 목 뒤에도, 등에도, 배에도 상처가 나 있었고 상처 주변에 피가 나 있었다고 했다. 

집으로 데려온 녀석을 엄마는 봉지에 담아 작은 수레에 싣고 남이 볼세라 서둘러 산자락으로 가셨다고. 산자락 소나무 숲 근처에 고양이를 묻고 오는 엄마의 발걸음은 더 무거웠겠지. 

엄마는 고양이가 안 보이던 아침의 두세 시간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하셨다. 이제는 눈이 닿는 곳마다 녀석이 눈에 밟혀 너무 힘들다고...

난 엄마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혼자서 벽을 보며 청소를 하려고 찾아든 빗자루를 손에 든 채 혼자 울었다. 비코는 우리와 13년을 살았다. 아프기도 여러 번, 병원 치레도 잦았던 노란색 고양이였다. 작년 초에는 잇몸에 염증이 생겨 송곳니만 빼고 이를 다 뽑고 끙끙 앓던 녀석이 여름을 나면서 퍽 건강해져 있었다. 엄마는 늘 고양이가 당신보다 먼저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니 끝내 그리되었다. 당신 손으로 해 잘 드는 곳에 묻어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하셨을 걸 생각한다.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예쁜 말로 고양이의 죽음을 표현한다고 해서 슬픔이 더 작아지지 않는다. 옆집 사는 미나 아빠가 들러 비코의 소식을 나누고 서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끼리의 위로를 나누었다고 했다. 

비코는 동네 아주머니 집에서 데려왔다. 꼬리가 길고 머리가 유난히 작아 암고양이처럼 보였던 잘 생긴 수고양이였다. 일찍 중성화를 시켜서 천진난만했던 녀석은 동네 사나운 고양이들과 잘 사귀지 못해서 가끔 다쳐서 돌아오기도 했다. 목욕탕을 가던 엄마와 나를 따라오다 신호등 앞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렸던 녀석. 발목을 덮을 만큼 눈이 쌓여있던 저녁이었다. 엄마는 아마도 그날부터 비코를 마음의 깊은 곳에 데려다 두셨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녀석을 안고 집까지 오셨으니. 한밤중이면 꼭 나가서 산책을 해야 하고, 낮에는 집안에서 잠자기를 좋아하던 녀석을 집안 식구들은 한결같이 귀여워했다. 

잇몸에 생긴 염증으로 밥도 먹질 못하던 때, 믹서에 곱게 단 캔을 접시에 담아 하루 두세 번씩 다 먹을 때까지 쫒아다니시며 먹이던 엄마. 입이 아파 씻지를 못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녀석과 전기장판을 나누어 쓰시던 아버지. 식구들의 고양이 병시중은 길었다. 그러던 녀석이 이번 겨울 들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난 봄이 되면 나아지리라 기대했다. 비코가 불사신도 아닐 텐데 난 그렇게 믿었다. 

여름이 되어 엄마 집에 다니러 가면 꼭 찾아가 보리라. 엄마가 묻어준 그곳에 비코를 찾아가 보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는 엄마와 나 사이에 계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