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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Aug 23. 2023

파스타 게카

이태리인들의 여름파스타

  8월도 후반인데 한 낮 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햇빛이 뒷목을 찌르면 그늘을 찾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된다. 요즘처럼 더우면 맛난 걸 먹겠다는 의지표현도 금지다. 냉면, 비빔국수, 콩국수, 열무국수, 묵사발, 아이스커피, 수박... 생각나는 건 온통 차가운 것들 뿐이다. 여기는 로마, 온도도 높고 습도도 높다. 로마에서 살면서 지중해성 기후의 쾌적한 여름을 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시원하게 냉면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면 잠시 더위를 잊겠는데. 심지어 냉장고까지도 덜 시원한 것 같은 로마의 음식문화에 여름이면 그만 질식할 것만 같다. 얼음이 어석어석 씹혀서 입안이 얼얼해지는 커다란 냉면 대접을 두 손으로 들고 그 시원하면서 달짝 짭조름한 육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났을 때의 부르르 쳐지는 진저리 한 바탕이면 한나절은 그 기억으로 버티겠는데. 이 성향마저 뜨뜻미지근한 로마인들의 세계에서는 음식도 뜨겁지 않으면 차가운 음식이 되는 거고,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달라면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커피를 콜드커피라며 내주는 데야. 


  바깥온도가 40도를 넘나들어도 파스타는 먹어야 하니 이 미적지근한 사람들도 더위에 대항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더라는 거다. 파스타 게카. 이걸 냉파스타라고 불러도 될까? 파스타 게카는 익힌 파스타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샐러드처럼 섞어서 먹는 요리다. 


  이태리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가장 고민하게 되는 건 어떤 파스타를 사느냐다. 모양도, 크기도, 제조회사도 많다고 꽤나 망설여진다. 스파게티만 해도 얇아서 스파게티니, 두꺼워서 스파게토니, 네모나서 스파게티 알라 기타라 등등 굵기와 모양이 다른 스파게티들이 있는데 하물며 짧은 파스타에는 돌돌 말린 것, 둥근 것, 뾰족한 것, 납작한 것, 민무늬, 빗살무늬,  소용돌이치는 모양, 나비모양 등 어마어마한 모양의 파스타가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파스타를 사는 걸까? 늘 궁금하다. 


  지극히 다양한 재료로 파스타를 요리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모양의 파스타와 어떤 소스가 만났을 때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는지 날 때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사람들이 파스타를 고르는 기준은 그 파스타를 양념할 소스의 성격에 달려있다. 소스 맛이 강하면 움푹 파인 파스타나 돌돌 말린 모양은 피하는 게 정석이다. 소스가 파스타에 너무 많이 묻어 파스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 소스맛만 너무 강해 입이 금방 지치게 되면 맛없는 파스타가 되니까. 속을 채우는 파스타는 버터와 세이지로만 양념을 하기도 한다. 이미 속재료의 맛이 강하기 때문에 겉에까지 소스가 많이 묻으면 맛이 복잡해지기 쉬우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스파게티 하면 카르보나라, 페투치네하면 라구, 링귀네와 페스토, 펜네와 토마토처럼 오랜 세월 동안 먹다 보니 그 조합이 퍽 좋았던가 보다. 


  오늘도 아침부터 더운 걸 보니 한낮 온도가 대단할 거 같다. 점심으로 냉파스타를 먹기로 한다. 

파스타 요리 중에서도 간단하고, 하루 전에 만들어 두었다 먹어도 되고, 도시락으로 준비해도 좋은 쓸모가 많은 요리다. 이 요리는 익힌 면을 살짝 식힌 후에 부재료를 섞는 정도이기 때문에 요리 자체가 뜨겁지 않아서 좋고, 부재료를 익히거나 졸이느라 불을 사용하지 않아 주방이 덜 더워서 좋다.  

오늘 내가 만드는 파스타게카에는 모짜렐라 치즈, 캔참치, 잘 익은 토마토, 바질 잎, 올리브유가 들어간다. 

참치는 체에 밭쳐 기름을 빼고, 토마토는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둔다. 모짜렐라 치즈도 미리 잘라서 체에 밭쳐 물기를 빼준다. 이제 면을 익혀서 살짝만 식혀준다. 면은 찬물에 헹구지 않는다. 찬물에 헹구면 소금간이 빠져서 싱거워지고 퉁퉁 불을 수도 있다. 대신 면에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고 넓게 펴서 재빨리 식힌다. 넓은 볼에 파스타, 토마토, 모짜렐라, 참치, 손으로 큼직하게 뜯은 바질을 넣고 약간의 소금을 넣어준다.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잘 섞어 한 시간 정도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다. 올리브유를 넉넉히 둘러야 면도 달라붙지 않고 맛도 좋아진다. 파스타는 짧은 면이 좋다. 푸실리, 라디아토리, 펜네 등도 다 잘 어울린다. 아무런 고민 없이 이렇게 단순한 재료로만 파스타게카를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을 썰어 넣어도 좋고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가 있다면 넣어도 좋다. 다만 재료에 대한 욕심을 너무 부려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깨지게 하지는 않는 게 좋다. 


  난 슈퍼에 갈 때마다 파스타 진열대 앞을 지나가는 걸 좋아한다. 동화의 세계에 잠깐 빠지는 기분이 들고 끓는 물에 삶아서 소스에 버무려 먹는 따지고 보면 국수에 이렇게 정성과 창의력을 아끼지 않는 이태리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이렇게 많은 면의 종류와 모양이 달라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음식에 이렇게까지 진심인 이태리사람들이 좀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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