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도 괜찮아
언니 일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가족의 위기 역시 엄마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급한 볼 일이 있어 밖에 나와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심각한 목소리였다. 평소답지 않은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또 일이 터졌구나 하고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내게 대뜸 이미영(가명)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미영? 흔한 이름이었지만 우리 가족들 입에서 이미영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들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엄마와 언니가 모르면 내가 모르는 것이고 아빠가 알면 내가 아는 것이 우리 집안의 분위기였다. 한 마디로 서로 시시콜콜한 비밀이 없는 집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엄마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아빠 월급 통장에서 이미영이라는 사람에게 50만원이 이체된 내역이 있다는 것이다. 순간 알 수 없는 촉이 발동했지만 엄마 앞에서 섣불리 입을 놀릴 수 없었기에 그저 곗돈을 부쳤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게 아닐까라며 우선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내 안의 목소리는 계속 떠들어 댔다. 그럴리가.. 아빠는 한평생 단돈 몇 천원도 누군가에게 꾸거나 꿔준 적 없는 사람이고 은행 업무에도 아직 서툴지 않던가. 게다가 왜 엄마와 상의하지 않았지? 이럴 땐 당사자에게 묻는 게 상책이니 엄마에게 당장 아빠와 통화해 보시라 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이미영씨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그건 아빠가 10년째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 원장의 이름이었다. 아빠의 설명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이미영씨가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서는 남편은 아프고 남동생이 돈 사고를 쳐 당장 치과치료 받을 돈이 없으니 5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단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은행에 가서 이체를 해주었다는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는 평소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직장에 있는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당당히 돈을 빌려달라고 한단 말인가. 그 여자가 미쳤거나 둘 사이에 뭐가 있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백보 양보해서 설사 그렇다 해도 왜 엄마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거기다 더 가관은 엄마가 아빠에게 이 일을 따져 묻자 되려 아빠는 버럭 화를 내며 이미영씨의 역성을 들면서 엄마를 더 나무랐다는 것이다. 아픈 남편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하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순간 띠용, 어디서 많이 본 레퍼토리.. 묘한 기시감이 밀려왔다. 설마.. 믿었던 아빠가?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바닷가 방파제에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는데, 나팔바지 위에 빨간 목티, 커다란 잠자리 안경에 바람에 흩날리는 장발 머리 비주얼은 딱 봐도 멋쟁이 신사보다는 잘 나가는 오빠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내가 아빠 사진을 보고 처음 한 말이 이 아저씨 젊을 때 한 가닥 하셨겠네? 였다. 이후 생각이 날 때마다 아빠에게 사진을 들고가서 기억을 상기시키듯 과거를 코치코치 캐물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증인으로 나서서 늬 아빠 인기 많았다, 라고 증언 하시는 거였다. 핸썸한 얼굴에 상남자 같은 성격, 거기다 순수미까지 다소 겸비한 아빠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하필(?) 엄마에게 첫눈에 반해 두 사람은 불꽃같은 사랑을 했고 금새 부부의 연을 맺었다. 어찌됐든 내가 태어난 이례 아빠가 여자 문제로 엄마를 힘들 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은 애처로울 정도로 아빠의 인생은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으며 속된 말로 인물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런 아빠가 정말 이미영씨와 그렇고 그런 관계인걸까?
아니 차라리 아빠가 누구에게나 그리 후한 사람이라면 이리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아빠는 근검절약이 몸에 베어있는 사람이라 단돈 100원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데 외간 여자에게 덜컥 50만원을 빌려줬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빠는 우리의 예상을 부정하고 자신은 떳떳하다 주장했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엄마 앞에서 그 여자 역성을 든 건 명백한 실수였다. 그 길로 엄마는 단단히 뿔이나서는 짐을 싸서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물론 당장 나오라고 우리가 부추겼다)
우리 엄마는 결혼 후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엄마를 통해 배웠는데 힘겨운 살림에도 한푼 두푼 아껴 주택을 구입하고 또 다시 그 주택을 재건축하고 빚 하나 없이 아파트를 장만한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다. 아빠는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먹는 사람이라 엄마는 아픈 날이 유일한 비번이었고 한 여름에도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 뜨거운 부엌 불 앞을 지켰다. 경상도 상남자는 육아와 부엌에선 늘 뒷짐을 지고 있었기에 집안 일과 두 딸을 돌보는 건 모두 엄마의 몫이었고 잠깐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혹여 아빠가 끼니를 거를까 늘 부리나케 집에 돌아와 아빠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에게 그깟 50만원으로 이따위 상처를 주다니.. 아빠가 미웠다. 이후 열흘 째 엄마는 언니 집에서 지내며 아빠와의 냉전을 이어갔다. 그사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한번 쯤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아빠는 끝끝내 연락 한번이 없었고 우리 역시 그런 아빠에게 배신감이 들어 아주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렇다고 아빠가 아주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구구절절 아빠의 나쁜 점만 들춘 것 같아 미안하지만 우리 아빠 역시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긴 했지만 가족들에겐 정말 헌신적이고 누가뭐래도 성실하고 생활력 강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지금은 거의 딸 바보에 가깝다) 아빠에 대한 고마움 감사함 이런 걸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이번 일이 더 가슴 아팠다. 하지만 어른 여자가 된 딸은 아무래도 엄마에게 더 감정이입하게 됐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사과 한 마디면 모두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왜 고집을 부리는 걸까. 우리 아빠는 정녕 엄마에게 눈꼽만큼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아니 서로 사랑했잖아! 왜 자꾸 상처만 주는데!
한동안 아빠가 왜 이미영씨에게 돈을 빌려주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딸이라서 남자의 세계를 전부 이해 못하는 걸까 싶어 아들로 빙의된 채 사색을 해보기도했다. 그러면서 몇 개의 퍼즐 조각들을 내 상상력에 의지해 맞춰보았는데 어쩌면 그게 일종의 남자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누군가에겐 천 만원, 억 대의 돈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빠에겐 50만원이 그에 버금가는 큰 돈이었다. 그런 아빠가 돈을 빌려줬을 땐 그 정도 돈은 부인 허락 없이 융통해 줄 수 있다는 남자의 자존심, 그리고 고맙다는 여자의 인사에 으쓱한 마음과 인정, 필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런 아빠의 감정을 충족해 주지 못했던 건 우리들이었을까? 그래서 아빠는 감정적 일탈을 했던 것일까.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보니 오히려 아빠가 측은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아빠는 아빠로 태어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 역시 인정 받고 싶은 남자였음을..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15일간의 가출을 끝내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도 생활이란 게 있으니 집 근처에서 볼 일을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고. 그때 엄마는 썰렁한 집에 덩그러니 혼자 소파에 앉아있는 아빠의 환영을 잠시 보았고 그 모습이 쓸쓸하고 불쌍해 보였다 그런다. 또 먹고 살겠다고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봐와서 대충 끼니를 떼운 흔적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고 한다. 고작 이렇게 살 거면서 똥고집은.. 그날 저녁 엄마의 깜짝 등장에 아빠는 그저 베시시 웃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참.. 지독한 사랑이다 싶었다.
이후 엄마는 아빠에게 당장 이미영씨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만약 받아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에 돈을 갚겠다고 차일피일 기한을 미루던 이미영씨는 아빠의 독촉에 결국 돈을 갚았고 엄마의 화는 그걸로 완전히 누그러졌다. 그 뒤로 아빠는 이미영씨가 한번 더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빌려주지 않았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더랬다. 참으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는다더니 과연 우리 아빠도 그럴 것인가보다 싶었다.
심하게 뒤끝이라곤 없는 우리 가족들은 이후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를 대했고 다시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는 그 뒤로도 이미영씨 미용실에서 헤어 컷트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50만원 때문에 벌어진 이 해프닝은 진짜 인간에 대한 환멸감 저 밑 바닥으로 나를 다시 끌어내렸다. 형부 일이 있고난 다음 콤보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내 실망감과 허탈감은 배로 컸다. 지금은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 나는 옆에 지나가는 커플들만 봐도 몸서리를 쳤고 치를 떨었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단 하나의 진실도 없는 거짓으로 점철된 존재같이 느껴졌다. 지겹고도 거북한 존재 그 자체로 여겨졌다. 애초에 환멸감을 없애고 싶다고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어쩌면 나의 판단착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만할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괜한 시간 낭비에 에너지 소모다, 그냥 감당하고 살던지 아님 다 포기하고 이번 생을 접던지. 그리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얼마 후 모든 일이 종결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환멸감이 자연스럽게 누그러진 걸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어라? 과거와 사뭇 다른 이 느낌은 뭐지? 이를테면 과거처럼 기억을 되감으며 매일 환멸감에 동동거리지 않게됐다고 할까. 왜지? 뭔데?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이제는 나도 어느정도 환멸감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랄까.. 익숙함 보다는 무뎌졌다고 해야할까 아님 초연해졌다고 해야하나. 뭐가 됐든 분명한 건 나는 아주 조금씩 더디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왠지 이대로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은 불에 달구면 진금이 된다는 말처럼 어쩌면 지금 나는 진금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기껏해야 분노 좀 느끼고 쓰라린 상처밖에 더 받겠냐고..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후 캐나다로 떠난 전 직장동료와 다시 조우하게 되면서 나는 또 다른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