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도 괜찮아
때는 바야흐로 인간 환멸 극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침내 인간에 대한 환멸감이 조금씩 잦아들 무렵이었다. 외출 준비를 막 끝낸 후 집을 나서려는데 언니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우리 자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는지라 목소리의 결만으로도 서로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날은 아리송하게도 언니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고 약간의 흥분기와 웃음기가 뒤섞여있었다. 내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더니 언니는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나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고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쎄한 기분이 들었다. 조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님 형부한테 사고가 난 걸까? 그게 아니면 바람이라도 피운 건가?! 답답한 마음에 대답을 재촉하자 언니는 급기야 참았던 설움과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형부가 거액의 빚을 졌다고 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형부로 말할 것 같으면 언니가 여태 소개한 남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신뢰했던 사람이었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나 도박같은데 한눈 판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때 백수인 나에게 기죽지 말라며 언니 몰래 슬쩍 용돈을 찔러주기도 하고 조카 기저귀는 혼자 다 갈았을 정도로 육아에도 열성인 아빠였다. 늘 유쾌함과 여유로움으로 주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성실하고 듬직한 동료이자 상사였고 하물며 우리 가족은 까탈스러운 언니 성격 참아 주고 받아준다며 형부의 역성을 들 정도로 수더분하고 모난 구석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부가 대체 왜, 뭣땜에 거액의 빚을 졌다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땐 형부는 이미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변호사를 선임해 개인 회생 절차를 밟고 있었고 미안하다는 말이 담긴 편지 한 장을 달랑 남긴 채 가족들 곁을 떠난 직후였다. (나중에 들으니 원양어선을 타려하셨단다)
하지만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언니는 형부를 겨우 달래 집으로 데려왔고 일단은 그저 살아있어 주었음에 감사와 안도를 해야만 했다. 허나 나는 이 끓어오르는 의문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형부를 추궁했다. 코인에 투자를 한 거냐, 주식이 폭망 했더냐, 아님 도박을 했나, 차라리 이런 사유라면 머리로 이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형부는 결백했고 본인도 일이 어째서 이지경까지 됐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미쳤었나 보다고. 그 말을 듣는 우리는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월급은 전부 언니가 관리해왔고 평소 어리숙한 면이 있었다면 모를까 누구보다 눈치코치 빠르고 계산 빠른 사람이 바보천치 같은 소릴하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참다못한 나는 5년 치 형부의 카드 및 통장 거래 내역을 전부 엑셀 파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연인 즉 이러했다. 형부는 결혼 직후 3천만 원 정도의 빚이 있었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에 살림도 꽤 넉넉한 편이라 굳이 언니와 상의하지 않아도 그쯤 언제든지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단다. 그런데 뜻밖의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은행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고 때문에 이자를 내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지자 낮은 금리의 대출 상품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 어느 대부 업체 광고를 보고 대출 갈아타기를 시도했다가 빚이 빚을 낳은 꼴이 되고 말았단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난 이게 명백한 사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대부업체가 형부 통장 내역을 조회한 후 낮은 이율을 적용해 주겠다고 했다는데 때마침 형부 통장이 피싱 피해로 거래 정지가 됐고 이로인해 원래의 높은 이자율이 적용됐다고 한다. 형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해당 거래 은행으로부터 사고 처리 연락을 받고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꼭 잘 짜인 극본처럼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대부업체의 폭리로 돈 세는 구멍이 생겼고 형부는 이를 틀어막기 위해 회사 상사, 대표를 비롯해 동료 수십 명에게 수십만 원에서부터 수천만 원까지 땡겨쓰고 갚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빚으로 빚을 막다가 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자 자포자기해 버렸던 것이다. 그 사이 형부는 언니 몰래 아들 돌반지, 팔찌, 돈 되는 건 뭐든지 닥치는 대로 팔았고 아직까지도 결혼반지는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데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그 반지를 가장 먼저 팔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쯤에서 그럼 3천이던 돈이 대부업체 덕분에 얼마가 되었느냐면 자그마치 5억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살면서 보지도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5억이란 돈이 공중분해 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니 인생 참 허탈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집도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서 언니가 말하길 길거리에 나 앉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혼 얘기가 빠지면 얼마나 서운한가. 부모님과 나는 이 일을 알게 된 순간 언니에게 이혼을 권유했지만 희한하게도 언니는 그때도 지금도 이혼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형부가 언니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혼 당할까 봐 였는데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당사자 본인이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 얘기도 며칠 거론되다가 쏙 들어가 버렸다. 사건이 터지고 형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비참하고 처참해진 형부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형부는 그때 아빠가 집에 뛰쳐들어와 주먹을 날릴 줄 알았단다. 그러나 그런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고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는 형부 앞에서 우리는 그저 무력한 한숨만 내쉴 뿐이었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골똘한 고민과 걱정뿐이었다.
형부를 믿었던 만큼 나의 배신감과 실망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었다. 형부의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서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거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형부의 습관과 성격까지 파악이 될 정도로 돈의 흐름은 파란만장했다. 형부는 그 와중에도 로또를 매주 샀고(당첨되면 빚을 갚으려고 했단다) 대출받아 돈을 빌려준 사람(빌려서 빌려 달라고 한 건 아니란다)에게 꼬박꼬박 은행이자까지 지급하고 있었다. 더 황당했던 건 회사 직원들 모두 합심해서 형부 일을 서로 함구하고 십시일반 돈을 꿔주었단 것이다. 그들의 단합심, 결속력에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이건 그 정도로 형부의 평판이 좋았다는 반증이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들의 믿음을 스스로 저버릴 때 형부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형부의 이중생활을 곱씹을 수록 숨죽여 있던 내 환멸감 역시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위장 밖으로 전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환멸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보다 더 시급한 생사의 문제가 눈앞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비난은 하루 저녁 뜨거운 식사로 끝이 났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빚을 해결하거나 사태를 수습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빚을 대신 갚아줄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럴 처지도 안 되니 마음이라도 함께 감당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여기서 누구한 명 자칫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야말로 파국이 되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결할 수 있다, 반드시 해결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서로에게 말하고 마음을 북돋는 일뿐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가족애가 힘겹지만 서로를 살게 했다. 그렇다고 언니가 아예 형부를 원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때때로 돈이 없어 하나뿐인 아들이 먹고 싶다는 과자 한 봉지 사주지 못할 때 단연코 형부에게 화살이 향한다고 했고 그럼에도 가슴 한 켠에는 형부가 솔직해지지 못한 원인은 결국 그런 말조차 편하게 할 수 없는 가정 분위기를 조성한 본인의 탓이 크다는 걸 그때마다 상기하는 모양이었다.
무튼 이후 다행히 형부는 빠르게 새 직장에 취직을 했고 개인회생 인가가 빠르게 나면서 빚을 변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경매로 넘어간 집은 파리 날리는 경매 시장에도 높은 금액에 낙찰이 되었고 오갈 데 없어진 식구들은 부모님이 마련해 준 거처에서 새롭게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월급의 절반 이상은 변제금으로 나가니 언니는 매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병까지 얻었지만 돈 빌려준 사람들 생각하면 이 정도 괴로운 것쯤은 견딜 수 있다며 죄책감을 진통제 삼아 지혜를 짜내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다.
마음이 좋은 건지 그저 단순한 건지 우리 가족은 형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이젠 먼지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물론 사람이 체면도 있고 자존심도 있으니 형부는 우리와 마주하는 시간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피하지 않고 책임감이든 뭐든 그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고 한 편으론 그런 형부가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돈 때문에 처자식과 부모를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세상 아닌가. 가족들이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단 걸 이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멸감은 상대의 거짓과 진실의 간극의 크기만큼 마음에 자라 잡는 것 같다. 내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전부 거짓으로 판명날 때 밀려드는 당혹감과 실망감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내 환멸감도 몸집을 키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번엔 환멸감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렸을까. 돌이켜보니 물론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환멸감을 더욱 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관계 자체가 가족이기 때문에라고 하는 역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 역작용은 무엇보다 주변 가족들에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행동을 배움으로써 그리고 동화되면서 함께 충격과 두려움을 공감하고 감내하면서 스스로 그어 놓은 환멸감의 경계를 허물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런지.
인생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사람과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는 시선과 관점을 제시해 줄 누군가가 우리 곁에는 반드시 필요하단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환멸이 혐오로 발전하는 일도.. 이로인해 일어나는 사건사고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이제는 내 인생에서 더는 밀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 일이 일단락 마무리 되고 우리 가족에게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평화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행은 언제나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법.. 더 강력한 녀석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