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님을 만나다

미워해도 괜찮아

by 반딧불



인간 환멸 극복 프로젝트, 그 성대한 막을 열기 위해 나는 가장 먼저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왜 하필 하고 많은 모임 중에 독서 모임에 가입했느냐 하면 사실 배드민턴이나 탁구, 러닝, 싸이클 등 몸을 쓰는 동호회에 가입하고 싶었으나 나 같은 초자는 아예 가입 자격조차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오프라인 모임에는 정말정말 죽어도 나가기 싫었지만 그나마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위안이 나를 독서 모임으로 이끌었다. 동호회 가입도 나름 자기소개라는 진입장벽이 있었는데 참석 버튼을 누르는 건 나로서는 어지간한 용기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가입 승인을 비롯해 참석 버튼을 누르고 실제 모임에 참석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가는 날 잡아놓은 교수형 죄수 같았다.



그렇게 첫 모임에 모인 인원은 나를 포함한 총 6명이었고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읽어온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식이었다. 나는 그때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겨우 40페이지 정도만 읽고 모임에 나갔다. 여러 순서가 지나고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책 소개를 짧고 굵게 마치고 내가 모임에 오게 된 핵심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숨김없이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타인에게 느낀 환멸감에 대해 여러분들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말했더니 각자 이러저러해서 인간에게 환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며 자신이 극복했던 경험까지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환멸감이 들 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단 걸 먹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독서 모임 다운 우문현답이었다. 그중에 어떤 분은 우리 모두 인류애를 잃을 때가 있지 않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건 주제와 살짝 비껴간 곁다리 얘기라 생각했다. 인류애는 환멸감과 또 다른 영역이 아닐까 하고.. 인류애가 사라졌다고 해서 환멸감을 느끼는 게 아니며 환멸감을 느낀다고 해서 인류애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애써 삼키며 첫 모임이 끝났고 뒤풀이를 간다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만날 목적이었으면 뒤풀이를 갔어야 하는 게 맞지만 술도 마시지 않는 내가 술자리에 끼면 필시 사람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에.. 실은 좀 쫌생이 같고 치사해 보이지만 그들이 먹은 술값까지 N분의 1일을 내야 했으므로 자진해서 빠졌다.



모임장은 서글한 인상에 사람이 좋아 보였고 똑 부러지는 말투를 가진 여자분도 꽤 호감이 갔지만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A님이었다. 직업도 번듯하고 뭣보다 외모가 아주 출중하고 눈이 부셨다. 외모지상주의라 손가락질해도 할 말은 없다만, 이후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A님의 마음을 사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으니 심지어 그중엔 성공한 여성분도 계셨으니 나만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A님 외모 찬탄은 이쯤 하도록 하고 나에게 가장 궁극적인 의문은 이것이었다. ‘저 사람은 이 황금 같은 주말에 왜 여기 앉아서 독서토론을 펼치고 있는 것인가?’ 저 외모에 피지컬이라면 지금쯤 한강 데이트를 즐기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또한 편견일지 몰라도 A님에겐 내가 알지 못하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었다.



이후 두 번째 모임에 나가서 뒤풀이 때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는 돌아온 싱글. 즉 이혼남이었던 것이다. 와중에 모임장도 덩달아 자신은 1년 사귄 애인이 있다며 커밍아웃을 했는데 가라앉았던 환멸감이 다시금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아니 누가 물어봤냐고. 이게 말로만 듣던 0 고백 1 까임이라는 건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이 계기를 통해 약간의 친분을 쌓은 A님과 나는 집도 버스로 한 정거장이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고 고향도 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믿거나 말거나 그의 이혼 사유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세 번째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더 내밀한 개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상황으로만 따지면 환멸감은 내가 아니라 A님이 더 많이 느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과 처한 상황에도 꽤 덤덤해 보였다. 아니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 한 번은 그런 A님에게 어떻게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의 감정을 이겨낼 수 있었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이겨냈다기보다 견뎌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지금도 여전히 밤에 잠을 잘 못 이루며 그나마 독서가 큰 위안이 되어준다고 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A님처럼 겉으로는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은 차마 본인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내면 깊은 곳에는 아무렇게나 꾹꾹 눌러 방치해 놓은 해묵은 감정들이 먼지 뭉탱이처럼 굴러 다니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약이라고 다짐하며 감내하는 것만이 극복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나중에 만나서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기약했지만 서로 바쁜 일정에 만나지 못했다. 근처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지만 전날 A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못 갔다. 이후 다시 가려고 재차 시도했을 땐 A님과 일정이 맞지 않았고 심지어 나도 코로나에 걸려서 가질 못했다. 이후 간간이 따로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대부분 안부를 묻거나 영화나 책, 드라마 얘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한참 후에 A님은 같은 모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핑크빛 소식을 전해왔는데 나는 그때 혼자 조용히 아연실색했다. 나로선 이 환멸감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A님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그 사람에게 부딪쳐 갈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건 A님과 나의 성향이나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상황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관점이랄까 태도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A님은 자기가 느끼는 어두운 감정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이 심상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투영한다면, 나는 일단 환멸감을 느끼는 내 감정을 부정하고 나 자신이 아주 뒤틀린 사람이라 자책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 심상 그대로를 상대에게 투영해 너도 이러면 안 된다며, 답을 정해놓고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결국 내 환멸감을 스스로 부추긴 꼴이란 걸 깨닫게 됐다. 이게 내 하드웨어에 설정된 기본 값이라고 한다면 환멸감은 내가 이 회로를 돌릴 때마다 불쑥불쑥 내 마음을 비집고 튀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번외의 얘기지만 A님이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나에게 직접 전할 때 살짝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디테일한 상황은 생략하고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내 안부 연락이 갔을 거란 게 나의 추측이다. 왜냐하면 A님 커플이 우리 지금 같이 있는데! 를 내가 아닌 운영진 단톡방에다 돌려서 불살랐기 때문이다. (왜 내가 운영진 단톡방에 있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서로의 감정이 타오를 때야 뭔 짓을 못 할까만은 공사를 막론하고 내꺼 니꺼 티 내는 게 마치 연애의 특권처럼 용인되는 게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면 어떤 프로젝트에 사내 연애하는 커플과 한 팀이 되었다고 하자. 중간에 낀 팀원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마치 연좌제처럼 이리저리 알게 모르게 업무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업무 연락이라도 할라치면 혹여 오해를 살까 눈치를 보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이 프로젝트 도중 헤어지기라도 하면 급기야 둘 중 한 명은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면 이 깍두기 같은 팀원은 몸고생은 몸고생대로 마음고생은 마음고생대로 하며 빠진 팀원의 일을 어떻게든 아등바등 매울 게 뻔하다. 이렇게 끝나면 그나마 해피엔딩인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대환장 할 노릇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외로 어느 집단에서나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동료의 불륜 문제로 식겁한 적 있던 나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모임에서 연애 문제로 직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칠 때는 정말이지 강력하게 모임에서 탈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진짜로. 그리고 몇 개월 후 A님 커플은 헤어졌고 A님은 아예 모임까지 탈퇴를 해 버렸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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