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도 괜찮아
2022년, 우리는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세상을 경험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제 팬데믹의 시기는 끝났지만 그 상흔은 2025년인 현재도 내 몸에 여전히 남아있다. 왜냐하면 코로나가 완치된 지 3년째로 접어들지만 아직도 코로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아주 다양한데 가장 불편했던 것 중 하나는 후각의 변형이었다. 커피에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맛이 나고 참기름은 시큼했으며 탄산음료에선 화장품 맛이 세제에서는 전부 똑같은 향기가 났다. 다행히 커피를 시작으로 후각이 변형된 순서대로 조금씩 제 맛과 향이 돌아오더니 최근에는 드디어 콜라 맛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세제 향기인데 이것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말 나온 김에 좀 더 설명하자면 나는 코로나에 걸린 지 일주일이 지난 후 브레인 포그 증상을 겪었다. 한창 일을 하던 때라 확실히 기억나는 게 있는데 글을 쓰는데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고 불과 조금 전 쓴 문장을 기억하지 못해서 문장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문을 열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는 문장을 쓰고 싶은데 문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그녀가 문을 열고 뭘 하려고 했더라? 는 식이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고 더운지 추운지 감각도 이상했다. 두 눈은 뻑뻑하고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뭘 해도 집중을 할 수가 없어 내가 바보가 된 게 아닌가 생각했고 24시간 계속 멀미를 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해봤지만 그저 후유증이니 몇 개월 있으면 좋아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전부 멈추로 그대로 본가로 내려가 요양을 시작했다.
이후 자그마치 이 증상만 회복하는데 3개월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이제 와서 추측하건대 아마 이 지경까지 몸 상태가 망가진 이유는 열이 떨어지자마자 쉬지 않고 밤새 일을 해서가 아닐까. 난데없이 왜 코로나 후유증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가 하면 앞서 얘기했던 A님과의 만남 이후 무려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도.. 아니 진구조차도 만날 수가 없었단 거다. 시작하자마자 프로젝트 중단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솔직히 그땐 건강 문제로 프로젝트고 뭐고 내 몸 하나 챙기기에 버거웠다. 우습게도 한때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나는 없었다. 다시 건강만 회복한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인간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본가에서 간만에 엄마가 해주는 따수운 밥을 얻어먹으며 가만히 침대에 누워 요양을 하는데 역시 적성에는 맞지가 않았다. 뭣보다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머리를 쓰지 않고 단순하게 할 만한 일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비즈 구슬 꿰기에 빠지게 됐다. 처음엔 그저 건강 회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는데 나중엔 이 일에 반쯤 미쳐서 비즈 구슬에 몇십만 원 가까운 돈을 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친언니까지 가세해서 새벽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목걸이, 팔찌, 반지를 내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만들어재꼈다. 24시간 풀가동 생산공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구슬을 꿸 때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첫 조카가 태어난 순간을 제외 한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비즈 덕분이었다는 걸 확신한다. 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치지만 몰입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그때 온 몸으로 실감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틈틈이 비즈 꿰기는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새해에도 못 본 동트는 광경을 꽃팔찌를 만들다가 본 적도 있었다. 그때 아 힘들다가 아니라, 아니 왜 벌써 아침이 왔지? 더 만들 수 있는데.. 였다. 손가락에 통증이 와도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도 좋았다. 잠을 자지 않았는데 개운하게 숙면을 하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때 왜 내가 비즈 미치광이가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내 일의 특성상 항상 뭔가 끝이 나지 않고 뚜렷한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데 반해 비즈는 즉각 즉각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니 만족감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석 구슬 종류와 아름다운 빛깔과 컬러, 장식물을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지.. 예나 지금이나 비즈 꿰기는 내게 인생 최고의 테라피스트(Therapist)다.
구슬 꿰기를 할 때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지만, 그 경지 속에서 인생에 대한 사색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언제 한 번은 꽃반지를 만들다가 마지막 매듭을 묶는 순간에 줄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참고로 0.2mm짜리 비즈 꽃반지 만들기는 난이도가 별 다섯 개다. 화도 나고 허무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이 사태를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수습할 방법을 고심해보니 구슬을 처음부터 다시 꿰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 끝에 결심을 굳히고선 다시 눈알이 빠져라 구슬을 꿰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은 배로 걸리고 몸은 고됐지만 나중에 완성하고 보니 쏟아부은 노동력만큼 흐뭇함과 뿌듯함도 배가 되었다.
다시 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인생에서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도 이 구슬꿰기와 별차이가 없음을 느꼈다. 아무리 조심히 꿰어도 자칫 힘조절을 못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하게 줄이 풀리거나 터쳐버리는것 처럼 인간관계도 때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긋난 타이밍과 불가항력적인 운명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고.. 또 아무리 온전하고 튼튼하게 완성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구슬이 깨지거나 탈락하거나 낡게 되는 자연현상 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란 애초에 불가능 한 게 아닐까 하고.. 결국 관계란 지속적으로 기존에 낡고 깨진 구슬들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구슬과 남은 구슬들을 새롭게 엮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어쩌면 나는 내가 가장 예쁘고 안정적이게 꿴 이 구슬들이 절대 낡지 않고 깨지지 않고 튕겨져 나가지도 않고 변하지 않고 계속 반짝여주었으면 하고 오랫동안 바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바람과 기대가 좌절될수록 안개에 뒤덮힌 듯 깊은 환멸감에 감싸였는지도 모른다. 때론 그건 그냥 부서질 때가 되어서, 원래부터 내구성이 약해서 일 수도 있는데 왜 이 모든 것이 내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을까. 처음부터 굴러다니던 것들을 대충 모아 아무렇게나 꿰어놓고 서랍속에 방치해둔 경우도 있을텐데 나는 왜 그게 내 인생에 그토록 소중한 거라고 착각했던 걸까.. 설사 좀 잘못 꿰어지면 어떻고 깨어지면 어떤가. 세상에 예쁘고 튼튼하고 다양한 구슬이 얼마나 많은데.. 다시 꿰면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나는 왜 인간관계에서는 적용하지 못했던 걸까.. 때로는 과감하게 놓아주고 용기있게 선택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걸 비즈 구슬을 꿰면서 깨닫게 됐다.
꽃반지가 끊어진 건 비록 참극이었지만 하물며 그 참극 속에서도 배울 건 있었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가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분명 배울 건 있으리라 믿으며 몸을 회복한 후 다시금 이 프로젝트를 이어나가 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