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해도 괜찮아
관계가 어떻게 되든 우리에게는 이겨낼 힘이 있다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일종의 중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안전장치였달까. 내가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비아냥거린 사람은 우리 언니 한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이쯤에서 우리 언니를 살짝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언니는 이불 밖은 죄다 지뢰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미리 사서 걱정하고 매사 부정적이기 때문에 되도록 언니의 말은 그러려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넘기는 편이다.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도 반대했던 사람은 유일하게 언니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언니가 심성이 고약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다. 언제나 힘들 때 내 편을 들어준 건 항상 언니였고 본인이 걱정이 많은 걸 걱정하는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단지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혹여 동생이 괜한 일을 벌였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만날까, 나쁜 사람을 만나서 다치거나 상처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거였다. 나도 언니만큼 불안과 염려가 참 많은 사람이지만 이런 쪽으로는 좀 과감한 편인 것 같다. 또 언니가 과감한 쪽은 내가 상당히 약한 편이다. 아무튼 언니와 나의 불안과 염려는 엄연히 카테고리가 다르다.
비록 언니는 이 프로젝트를 대놓고 반대했지만 내 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멋지게 산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며 기대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반대가 익숙했던 내가 누군가의 지지를 받게 되니 덜컥 부담감이 밀려왔다. 분명 이 프로젝트를 하다가 중간쯤 되면 흐지부지되거나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현타가 올 텐데.. 그래도 온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놨으니 양심이 있고 체면이 있다면 니가 뭔가는 하지 않겠니? 그렇게 밀려오는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두려움도 뭉개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2023년을 목전에 둔 12월 곧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전 직장동료의 송별회를 위해 성수동 근처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 있다는 주인공과 연락이 되어 카페로 향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푼수처럼 또 내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들려줬는데 그 친구는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는 적극 공감하며 나와 비슷한 고민을 본인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걸 친한 동생에게 말했더니 동생이 이런 얘길 해주었다는 것이다.
“언니에게는 관계가 어떻게 되든 그걸 이겨낼 힘이 있어요.”
그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하마터면 송별회도 하기 전에 주책없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어떤 관계를 만나더라도, 그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하더라도 그 끝이 끝내는 파국일지라도 우리에겐 그걸 극복하고 이겨낼 힘이 있으니 관계 맺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 위로를 건네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또 이런 동료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인가. 덕분에 프로젝트를 실행할 큰 용기가 생겼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소 지구력은 부족하지만 실행력은 은근 뛰어난 편인 나는 곧바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을 몇 가지 세웠다.
프로젝트명은 ‘인간 환멸 극복 프로젝트’. 룰은 다음과 같다.
1. 내 업무/일상의 경계 외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
2.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이 아니라 생면부지의 ‘남’이어야 한다.
(무척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니 신중하자!)
3. 성별, 연령, 직업, 사회적 위치, 가정환경 등 관계없이 일단 꽂히면 친해진다.
(범죄자 제외. 그런데 범죄자인 걸 어떻게 알아본담?)
4. 한 달 동안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고, 매달 한 명씩 새로운 사람을 발견한다.
5. 중간에 관계가 어긋나도 이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는다.
막상 계획을 세우고 보니 너무 추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지만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