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8. 어머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2011년 3월 5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도 물이치료 하러 가야지

다리 아파서 마음이 참 조치안타

무순 까달인가 참 알수 업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노릇이다

잘 아는 사람보고 무러봐야지

내가 복잡하니가 어머님 생각이 절로 나네요

어머님게서 도와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게서도 도와주세요


2011년 3월 11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친구네로 놀라가섯다

내가 올해는 낫븐 해엿다고 하엿다

그러나 올해만 지나가면

괜찬다고 하여서 마음이 좋다

우선 아들 사업이 찻차 좋아진다고 하여서

내 마음 깃벗다

하하 우수며 집에로 도라왓다

오늘도 깃부고 조흔 하루엿섯다


3월 5일의 일기에서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좋지 않으니 우선 어머님을 찾습니다.

아기들이 아프거나 무섭고 불안하면 엄마를 먼저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여든이 된 할머니도 어머니가 그립다는게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돌아다니기는 하여도 한 번 다친 노인네의 다리는 잘 낫지를 않고 말썽입니다.

아직 찬바람도 가시지 않아 성한 몸이라도 뼈가 시릴 계절이니 더욱 그러하셨겠지요.

거기다 아들이 하는 사업도 어렵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십니다.

어디 점이라도 잘 보는 집에 가서 물어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실만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기댈 수는 없고 그래서 끝내 찾아가 본 친구네 점집에서 올해만 지나가면 다 좋아지고 아들 사업도 잘 된다는 답을 들으셨지요.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의 짐을 벗고 하하 웃으며 집으로 돌아 오실 수 있었습니다.

순리대로 사람의 도리를 다 하며 살아도 어찌 피할 수 없는 우환이 찾아오고는 하는게 인생입니다. 엄마는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을 하나 받아 오셨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하고 노력하다가 안되면 천지신명의 힘을 빌어서라도 살아내야 하지요. 우선 좋은 소리를 들었으니 오늘 당장은 기쁘고 좋은 하루였다고 적으셨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아주 어린 애기 였을 때 처음으로 기억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엄마의 등에 포대기로 업혀 있었고 엄마는 먼 길을 나를 업고 가셨습니다. 엄마는 지치고 힘이 드신 것 같았습니다. 제 기억의 왜곡이나 확장일 수도 있지만 어리고 어린 제가 느끼기에도 엄마의 마음은 어둡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먼 길을 걸어 엄마가 도착한 곳은 어느 점집이었습니다.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이 마루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도 등에 업었던 나를 풀어 놓고 마루에 걸터 앉아 한 숨을 돌리셨습니다. 엄마의 차례가 되었고 나는 엄마를 따라 무당이 있는 신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울긋불긋한 치장을 한 조각품과 장식물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했고 나는 무섭기만 했습니다. 엄마와 무당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마도 집안에 닥친 우환에 대해 묻고 해결책을 받으셨을 겁니다.


제 기억은 거기까지 이고 엄마가 애기를 업고 먼길을 걸어 갔던 수고가 집안의 우환을 물리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복채를 내고 무당이 내주는 부적을 소중히 들고 오셨겠지요.

그 부적들은 대개 드나드는 방 문 위에 매달아 놓았던 복조리 속에 넣어놓으시곤 하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민간 신앙에 기대어서라도 헤쳐 나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힘든 일이 닥쳐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어떻게라도 그 어려움을 벗어나서 안정적인 일상을 찾으려 하셨던 노력이고 마음가짐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에 또 한 가지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나뭇잎도 다 져버린 늦가을이었지 싶습니다. 어느 새벽 곤히 자고 있는 저를 엄마가 깨우셨습니다. 엄마는 이미 작은 시루에 팥시루떡을 쪄 놓으셨고 나에게는 술 주전자와 북어를 들고 따라 오라 이르셨습니다.

달도 없는 깜깜한 새벽의 냉기가 오싹하게 온 몸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엄마를 따라 갔습니다.

엄마가 시루떡을 이고 도달한 곳은 바로 우리 동네의 성황나무 였습니다. 그곳에다 엄마는 가지고간 간소한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제물은 간소했지만 엄마의 기도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엄마는 어린 나를 대동하고 새벽길을 밟아 성황신을 찾으셨던 걸까요.


지금에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되고도 남는 일들은 많습니다. 열두식구 살림 살이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수많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작게는 아이들이 고뿔이 걸리거나 다쳐서 아프기도 했을것이고 크게는 농사가 마음대로 안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학교 입학을 앞둔 자식들의 합격을 기원하거나 아버지 하시는 일들에 사고가 없기를 바라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었든 엄마는 우선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여 집안의 액운을 막아내고 복을 불러들여 가내가 두루 평안하길만을 비셨을 것입니다.


그 성황나무는 지금도 듬직하고 의연한 자태로 우리 시골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