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권의 일기장
7. 이제 나는 별디도 다닐 수 잇다
2011년 2월 24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경로대학 신청하는 날이다
점심 잘 먹고 서산 아리랑도 듯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재미잇게 다녀왓다
그리고 상도 준다고 옛부게 하시고 오라고
선생님이 하시엿다
상은 무순 상을 주나하고 궁금하다
머리도 잘 만지고 가야지
2011년 2월 26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도 참 좋은 하루엿섯다
홍서방네 예식장에도 가고
내가 도라다닐 수 잇스니 참 기분이 좋다
기부스하고 잇슬 때 생각하면 참 좋다
그때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도라다니나 하엿는데
이제는 나도 별디도 다닐수 잇다
011년 3월 3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노인대학 가는 날이다
일직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야지
가보니까 운동도 하고 노래도 하고 참 재미잇섯다
3백50명 중에서 보는데서 상장도 밧앗다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참 재미잇엇다
다리 아파서 고생하엿는데
학교가서 참 조앗섯다
엄마는 지난 초겨울 낙상해서 다친 다리가 다시 회복 되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자마자 서산의 경로대학에 다니실 생각부터 하십니다. 경로 대학에 가면 많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여러 강사님들에게 강연도 듣고 노래도 배우고 운동도 하며 즐거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경로 대학에서 상을 준다니 무슨 상일까요. 그 상을 받으러 머리도 잘 만지고 예쁘게 하고 가야겠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3백 50명’이 보는 중에서 상장을 받으셨다 합니다. 그게 무슨 상이었을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엄마는 서산시나 자치센터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날짜마다 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월요일은 서산 문화원 노인대학, 화요일은 운산 민요 교실, 수요일은 신용금고 장구교실, 목요일은 음암 경로대학 등등 하루도 잊지 않고 그 행사를 기억하고 시간을 맞춰 찾아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또한 동네의 애경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하여 기쁨도 같이하고 슬픔도 같이하며 친목을 다지셨습니다.
여든을 넘은 어르신의 활동력이 놀랍고 생에 대한 열정이 뜨겁기만 합니다.
이렇게 엄마는 ‘이제는 별디도 다 다닐 수’있게 되셨습니다.
엄마의 일기에는 아주 정확한 숫자가 자주 나옵니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기도 하고 사람의 수를 기억하거나 쌀포대나 소금 포대의 개수 등을 아주 잘 기억하고 계십니다.
또한 24절기와 삭망과 조금과 한식과 단오와 백중과 지장재일을 기억하고 그 날의 의미에 적절한 예를 갖추거나 의식을 행하셨습니다.
정확한 달력이 없던 어린 시절에도 엄마는 항상 이런 날들을 챙기셨고 심지어는 농사지은 첫 농작물 중 오이 하나를 따는데도 날을 정해 천신이라는 행사를 지내셨습니다. 천신제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풍요로운 수확을 빌고 농작물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지금도 생각 나는게 막 물이 오른 첫 오이를 따서 대바구니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 놓았던 것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엄마는 지금 첨단 장비들로 무장한 우리 세대와 비교해 보아도 참으로 총기가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후 이주일 후의 일정을 핸드폰 달력에 적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메모장 하나 없이 수많은 명절과 온 가족의 제사와 생일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는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 있습니다. 제가 마흔이 넘은 어느날 온 가족이 행사가 있어서 다들 모였는데 엄마께서 자식들의 나이를 정확히 기억하시는지 알아보는 장난 같은 것을 했습니다. 큰 딸에서부터 막내까지 모두 생일이 맞았는데 저만 하루 생일이 틀린 것입니다. 저는 두 번을 묻고 세 번을 물었지만 대답은 내가 알고 있던 날보다 하루 늦은 날이었습니다.
어머나 엄마! 그럼 저는 마흔 넘어서까지 다른 사주팔자로 살아왔다는 것인가요? 시집 갈 때 보낸 사주단자도 잘못 보낸 것인가요? 내 자식의 작명을 위해 내어 준 부모의 사주도 잘 못 된 건가요? 그렇게 물으며 따지는 척 웃으며 넘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총기가 좋으신 엄마가 왜 제 생일을 잘 못 알고 계셨겠습니까. 미욱한 제가 잘못 알고 있었겠지요.
그랬거나 말았거나 사주 팔자가 어땠든 엄마의 넷째 딸과 외손녀는 태어난 팔자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별디도 다 다니실 수 있게 된 엄마는 한동안 기쁘고 즐거운 날들을 보내셨습니다.
엄마의 일기는 오늘도 조은 하루 데주세요로 시작해서 오늘도 깃브고 즐거웟었다 라고 적으신 날들이 많은걸 보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