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권의 일기장
6 . 예쁜 며느리가 아침 준비해 놓고 잔다
2011년 2월 1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도 며눌리가 사무가 밧부게 다니엿다
병원 물이치료 데려가주고
제훈이 학원 태다주고
떡국 쓸고 나 점심 차레주고
집안 치우고
며눌아 오늘도 수고 만해엿네요
며늘아 오늘도 수고가 만햇다
감사하다
2011년 2월 9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유수와 갓은 세월이 바람결 갓기도 하고
흐르는 물결도 갓구나
내 나이 80이라니
어제 청춘 오늘 백이라더니 그 말이 꼭 만는 말이다
며누리가 오늘 물이치료하고서 오다가
도가니탕 사줘서 잘 먹고서 집으로 와서
잠 한심 잘 잣다
2011년 2월 19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작은 아들 식구가 왓다
여러 가지 다 사 갓고서 왓다
예쁜 며눌리는 아침 준비를 다 해녹코서 잠 잔다
손자들도 자고 아들도 자고
나 홀로 생각해보는 밤
팔십 생일이 웬 말인가
지나 온 세월이 너머나 아시워라
구진일 깃쁜일 만하건만...
2월 1일의 일기와 9일의 일기는 엄마가 동생 집에서 아직 다치신 다리를 가료 중이실 때이고, 2월 19일은 엄마의 다리에 차도가 있어 시골에 내려와 생일을 맞이하게 된 때인 것 같습니다.
세 날의 일기 모두에서 바쁘게 일을 보고 다니는 며느리의 일상을 적고 감사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장을 보아 와서 일찌감치 아침 준비를 다 해놓고 깊은 잠이 들은 며느리가 얼마나 예쁘셨을까요.
그 이쁜 며느리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둘씩이나 낳고 집안 살림도 알뜰히 살피고는 했지요.
할머니 생신이라고 내려온 손자들도 자고 아들고 잠들고 홀로 깨어 이 상념 저 상념에 젖어있는 팔십 노인네의 마음.
생각해 보니 궂은일 기쁜 일도 많았던 그 세월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시답니다.
내외가 사업으로 바쁜 큰오빠네를 대신해서 남동생 내외는 집안일의 대소사를 거의 맡아서 해냈습니다. 명절 차례, 제사 모시기, 생신상 차리기 등은 우선 작은 며느리가 중심이 되었고 거기에 시누이들이 손길을 보태었습니다. 그런 작은 며느리가 엄마는 얼마나 든든하고 고맙고 예쁘게만 보였을까요.
올케는 시골집에 오면 우선 일하기 편한 몸빼로 옷을 갈아입고 앞치마부터 둘렀습니다. 그렇게 노인네 혼자 허허롭고 썰렁하게 살아가던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묵은 반찬을 정리하고 미역을 물에 불리고 양지를 삶고, 갈비찜을 하고, 갖은 채소를 볶아내고 삶아내고, 밥쌀을 안쳤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어느 자식이 찾아와 줄까... 노인네 혼자 기다림으로 지쳐 퇴색 되어가던 시골집은 갑자기 여러 가지 음식 냄새로 훈기가 돌고 사람 사는 활기가 넘치는 보금자리로 변신합니다.
울 엄마 젊어 하얀 앞치마를 두르시고 종종 걸음으로 부엌 살림을 해 내시던 것과 흡사합니다.
엄마가 가마솥 솥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몇 번을 하시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광을 몇 번 들락거리면 거기서 요술같이 열두 식구 먹을 것이 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할머니께서도 부엌에 계시기만 하면 된장 찌개가 보글보글 끓여지고 게국지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끓어 올라 마음부터 배불러 오던 그때처럼 말이지요.
큰 며느리도 아니고 작은 며느리로서 명절과 집안 행사를 맡아서 하는 일이 즐겁기만 했을까요. 힘들고 고달프고 서러웠겠지요. 그걸 다 품어낸 너른 마음을 헤아리면 시누이로서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마 엄마도 같은 마음이셨겠지요.
딸들이 모이면 엄마에게 장난처럼 묻고는 했습니다.
“두셋만 낳지 웬 애들을 여덟씩이나 두셔서 며느리 힘들게 허신대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엄마가 첫딸을 낳았는데 할머니께서 아이고 달덩이같이 이쁘기도 하구나 고생했다! 하시며 커다란 대접에 미역국 한 사발과 고봉 쌀밥을 해주셨답니다. 그날로 금줄을 대문에 치시고 삼칠일 산구완을 다 해주셨고 엄마는그게 참 감사하고 좋았답니다.
그리고 또 다음 자식을 낳으면 아이고 이 애는 더 이쁘구나! 또 다음 애가 태어나면 아이고 얘는 더 복스럽구나! 그래서 열심히 애를 낳았는데 끝내 여덟밖에 못 낳았다고 농을 하시었습니다.
엄마의 일기에는 ‘우리 부모님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그 많은 자식을 낳아 키운 것도 할머니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집에는 여덟 번의 금줄이 대문에 걸렸겠지요.
여덟 번의 금줄에는 붉은 고추가 두 번, 푸른 솔잎이 여섯 번 달리었습니다. 왼 세끼 줄에 검은 숯과 흰 한지를 매달고 아들이면 붉은 고추를 딸이면 푸른 솔가지를 듬성듬성 매달았습니다. 금줄에 매단 것들은 딸을 낳았는지 아들을 낳았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되기도 했고 잡스러운 기운이 집안에 드는 것도 방지하는 의미도 지녔습니다. 또한 금줄을 띄운 집에는 외부인들이 함부로 출입을 할 수 없어서 면역력이 약한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도 했지요.
어머니는 이렇게 정성으로 키워진 자식들과 함께 다정스럽게 살아가는 며느리가 예쁘기만 했겠지요.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엄마 그리고 며느리는 우리 집안과 부엌을 든든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언제나 바지런하게 집안일들을 돌보았고 자식과 손자들을 보듬었고 먹이고 입히고 길렀습니다. 그런 우리 집안의 여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