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5.정월 대보름달 둥실 떠올라


2011년 2월 17일


오늘도 조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아침 일직 이러나서

기발기 술도 한 잔 하고 보룸도 깨밀고 하여다

오곡밥도 해서 먹고 다 하여다

친구가 와서 밥도 갓치 먹고 말동무도 해 주엇다

그리고 용순이 엄마가 반찬도 해 줫다

회관에서 친구들도 왓섯다


2012년 2월 6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오곡 잡곡밥 해서 먹는 대보름이다

보름달 보고 일년 소원성취 운수 대통하게 해달라고 비는 날이다

나도 건강하게 해주시고 8남매가 다 건강하게 해주시고

소원성취하게 해주시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무관세음보살


2013년 02월 24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금쪽 가튼 내 자손들하고

대보름 잘 세엇다

선물도 여러 가지 밧고 우수면서

대보름을 깃부구 즐겁게 잘 지내엇다

내 자손들은 다 하나 가치

효자들만 데엿는지 감사하기만 하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2014년 02월 14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연날에는 정월 대보름도 큰 명절이엇는데

요지음은 보름도 시시하다

동네 집집마다 풍물 하면서 돌고

술도 먹고 하엿는데 요지음은 시시하고나

사람도 업고 연날 풍습 사라저 가는구나

부초님 감사함이다.


음력으로 새해 첫 보름 날인 정월 대보름.

엄마는 설날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세시 풍속 중 하나인 정월 대보름 정경을 4년 동안 매 해마다 적으셨네요.

설날은 큰 명절이면서도 가족 중심으로 행해지는 풍습이었다면, 정월 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흥겨운 잔치를 벌이는 마을 중심의 요란스럽고 흥미진진한 행사로 채워지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환갑이 된 이 나이에도 정월 대보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소박하면서도 맛있는 먹거리들도 많이 준비되었고 흥미롭고 재미난 놀이 들도 많았습니다.


엄마의 일기에서 적으셨듯이 엄마는 대보름을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들을 미리 장만하셨습니다. 시레기 나물, 피마자 나물, 고사리 나물, 무 나물 등 지난 해 갈무리 해 놓았던 아홉가지 나물과 채소들을 손질하는 것으로 대보름 음식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곡 밥을 위해 콩과 팥 수수 조 찹쌀 등을 물에 불리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백태를 하루 종일 물에 불려 두부를 만들 준비를 하셨습니다.


대보름 전에 새벽잠이 덜 깬 방안 이불 속에서 엄마와 할머니께서 마루에 앉아 오순도순 맷돌을 돌려가며 두부콩을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참으로 아늑하고 안정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콩물을 가마솥에 끓일 때 커다란 주걱으로 콩물이 눓지않도록 젓는 일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끓인 콩물에 간수를 부어 설설 저어주면 순두부가 몽글몽글 뭉쳐졌고 그게 단단한 두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두부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마술 같아서 옆에서 보기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정성이 들여 차려진 오곡밥과 평소에 먹기 어려웠던 아홉 가지 묵나물들로 아침을 먹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온 세상이 아이들의 놀이터 였습니다.

부럼을 깬다고 호두 땅콩을 두고 나무 망치질을 하기도 했구요.

스스럼 없는 동네 사람을 만나면 큰 소리로 먼저 '내 더위 사세요'외쳤지요. 더위를 팔면 한 해 동안 열병을 앓지 않으며 고생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침 해가 슬슬 처마 꼭데기 쯤 올라올 때면 제일 먼저 풍물패가 온동네를 돌며 지신 밟기를 했습니다. 집집마다 돌며 집 안팎에서 북,징,꽹과리, 장구 등 사물을 앞 세워 앞마당이 떠나갈 듯 담벼락이 무너질 듯 흥겨운 연주를 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집 안에 붙어있던 귀신들은 당연히 놀라 달아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풍물을 놀러 온 이들에게는 술과 음식을 차려 드렸고 곡식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린 우리들에게 제일 즐거운 일은 바로 쥐불 놀이였습니다. 어른들의 허락을 받은 공식적인 불놀이이며 불장난.

정월 대보름 전부터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아 병해충을 없애고 쥐들의 번성을 막아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일이 바로 쥐불 놀이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대보름 한 참 전부터 깡통을 구해야 했습니다. 불 깡통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통조림 깡통 하나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깡통을 가진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깡통을 구하면 못으로 망치질을 하여 숭숭 구멍을 내었습니다. 미리 나무 장작에 불을 피워 숯을 만들고 이 숯을 깡통에 넣은 다음 광솔이라는 것을 넣었습니다.

광솔은 소나무의 마른 그루터기 등으로 송진이 있어 화력이 아주 좋고 오래 불이 탔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깡통을 가지고 들로 나가 마음대로 불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싸늘한 정월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그림자까지 지는 밤에 우리 형제들과 친구들은 마음껏 온 들녘을 쏘다니며 쥐불놀이와 불 깡통 돌리기를 하였습니다.

불 깡통은 철사에 단단히 묶여 둥글게 돌면서 아름다운 궤적을 만들어 냈고 우리들은 그 모습에 혼이 나갈 것만 같이 신이 나기만 했습니다.

우리들이 지나간 논두렁과 밭두렁은 붉은 들불이 맹렬히 타올랐고 우리들은 그 온기와 불빛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어두운 밤 활활 타오르는 들녘의 불길은 아이들의 혼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놀고 나면 우리들의 옷에는 온통 불내가 가득 배어 있었고 보름 달은 어느새 하늘 중천으로 휘영청 떠 올랐습니다. 이제는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걸 슬슬 눈치 챕니다.

그러면 한명 두명 아이들은 사그러져 가는 불 깡통을 멀리 던져 화려한 불꽃놀이로 쥐불놀이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얼굴에 시커먼 재를 묻히거나 옷에 불똥이 튀어 구멍이 난 채로 집으로 돌아와도 엄마는 별다른 꾸지람 없이 가마솥에 넣어 놓았던 따스한 오곡밥을 그 한밤중에 차려주셨습니다. 놀고 오느라고 허기졌을 테니 배를 채우고 자라는 배려입니다. 정월 대보름에는 밥을 아홉 번을 먹어도 되는 날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홉 가지 묵나물과 아홉 번 먹는 오곡밥은 완성의 숫자 아홉과 다섯에서 오는 풍년을 기원하고 큰 복을 바라는 민간의 신앙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2월 정월 대보름의 일기에는 이러한 소중하고 의미있는 풍습이 세월이 변하여 모두 사라지고 대보름을 함께 즐길 사람도 없어 시시해져 버렸다고 적으셨습니다.

엄마에게도 사라져 버린 풍습이 되었듯이 저에게도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정월 대보름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와 할머니와 가족들과 함께 보낸 이 정월 대보름의 기억을 세월의 창고에 저장해 놓고 가끔 하나씩 꺼내 다디단 엿가락을 녹여 먹듯 추억으로 먹습니다.

그 힘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