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권의 일기장
4. 함지박 가득 수수 팥단지
2011년 1월 2일
오늘도 조은 하루 데주세요
어제 청춘 오늘 백이라드니
내가 팔십이 웬마린가
착한 아들 딸들아
참 고맙다 고마워
나는 세상에 나와 깃뿌고 즐거워요
세상살이 인생살이가 그런거라네요
내 몸이 아프고 나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난다
그 많은 세월을 우수며 살아왓다니 말야
2011년 1월 21일
오늘도 조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네째딸하고 옛날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엿다
참 좋은 일도 만앗엇고
어려웟던 일도 만앗엇지
8남매 잘 커 주어서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 엄마는 무어시라도 해주고 싯다
8남매 잘 커 주어서 참 고마워
참 고마워요
2011년 1월 31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병원으로 치료 바드러 가는 날이다
아들 생일이 오늘이구나
미역국 마식게 먹고 떡국도 해서 먹고
추억 생각도 하여 보앗다
내가 팔십 되고 보니
팔남매가 다 잘 커 주어서 고맛다
행복하게 다 잘 사라다오
아들 생일 축하 한다
엄마의 일기는 이렇게 매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라는 기원으로 시작됩니다.
그런 기원으로 시작되는 하루하루가 흘러가 버리고 ‘어제 청춘 오늘 백이라더니 팔십이 웬 말이냐’라고 적으셨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나와 기쁘고 즐겁게 웃으며 살아왔다 하십니다.
딸 여섯 아들 둘 이렇게 팔 남매를 키워놓고 보니 다들 잘 커주어서 고맙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적으셨습니다. 우리 자식들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 그 마음이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일기에도 적으셨듯이 좋은 일도 많았지만 궂은일은 더욱 많고 많기만 했습니다.
형제 중에 다섯째인 저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엄마의 생을 지켜와 봤기에 엄마의 인생이 그리 기쁘고 즐겁지 만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하신 엄마는 이순도 지나고 고희도 지나 팔순이 되어 이미 세상을 완전히 달관하신 듯합니다.
잠을 줄이며 열두 식구 살림을 살아내야 했던 고달픔도, 시어머니와의 미묘한 갈등도,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에서 오는 일상의 불안도 모두 잊어버리고 양잿물로 하얗게 표백을 한 듯 좋은 것만 기억하시고 계셨습니다.
어찌 그리 고운 얼맹이로 쳐내듯 하얀 떡가루만 남고 싸래기도 쌀겨도 모두 골라내고 자신의 성심을 곱게 다스리고 품성을 바르게 잡으실 수 있었는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일기장에는 언제나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그득합니다.
하지만 이 고마움과 사랑은 오히려 우리 자식들이 돌려드려야 할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엄마의 자식 사랑 중에 특별한 것은 그 많은 자식들 생일에 꼭 수수팥단지를 빚어서 생일상을 차려주시던 것이었습니다.
수수와 팥은 모두 붉은색으로 벽사의 의미를 가집니다. 액운을 물리치고 건강한 성장을 축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의미 있는 떡입니다.
또한 생일상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고 산모용 미역으로 끓인 톱톱한 미역국이 한 사발씩 올라왔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생일을 보내야 잔병치레도 안 하고 함부로 넘어져 다치지도 않고 건강하게 자란다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그 정성으로 팔 남매는 모두 무사 무탈하게 잘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던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내 위로 언니 세 명이 서산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답니다. 어느 날 큰 언니의 생일이었는데 언니들이 잠도 깨기 전 새벽같이 누가 찾더랍니다. 반가운 엄마의 목소리였지요. 엄마는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있었는데 무명 덮개를 열으니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수팥단지가 들어 있었답니다.
엄마는 잠도 설치시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수수경단을 만들고 팥고물을 내어 뜨끈뜨끈한 생일
떡을 만드신 겁니다. 그걸 머리에 이고 20리가 가까운 새벽길을 걸어가서 생일떡을 기어코 먹여주신 것입니다. 찬서리가 내린 시골길을 고무신을 신고 걷는 길은 미끄러웠을 테고 엄마의 고무신은 흙투성이에 마른 풀이 달라붙었답니다.
언니들은 지금도 그 새벽에 자식들 입에 떡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엄마의 만족한 미소와 구수한 수수팥단지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1월 31일의 일기도 특별합니다. 제 남동생인 둘째 아들은 설날을 이틀 앞두고 엄마가 떡국떡을 해오던 중에 산기가 있어 곧바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일기에도 미역국도 먹고 떡국도 먹었다고 적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기의 시작에도 적었듯이 그날은 병원 검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한쪽 다리가 골절되어 걷지 못하는 불편함이 얼마나 컷을 까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오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엄마의 일기는 따뜻하기만 합니다. 당신의 아픔보다 우선 잘 자라준 자식들이 고맙고 모두 잘 살아 주기만을 바라십니다. 특히 다정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듯 들려주신 ‘아들 생일 축하한다.’ 이 한마디는 아들을 축복하는 거룩한 기도와도 같이 들립니다.
이렇게 엄마의 읽기를 다시 읽으며 옛일을 추억하고 나와 가족들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을 남기는 일이 이젠 넷째 딸인 저의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엄마의 미역국과 수수팥단지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