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11. 1번부터 8번까지


2011년 5월 8일


오늘도 깃부고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도 아침해서 먹고 인는데
은행나무에서 까치가 깍깍 지저서 반가웟다
그리고 나서 전화가 와서 바다보니 오번 착한 딸이엿섯다
그리고 나서 착한 딸 사번이 왓다
여러 가지 선물도 사왓다
생기리포가서 회나 먹자고 하엿다
8남매 잘 커주어서 고맙다
키우느라고 고생도 햇섯건만
지금은 고생 다 이저버리고 행복하다

2011년 10월 16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기분이 좋앗섯다
큰아들이 회사가 어려웟섯는데 요지음은 수출도 하고 하니까
어머님 걱정하지마세요 어머님이나 건강하세요 라고 전화가 와서
내 마음이 안심하엿다
내 마음은 자식들이 다 잘 데기를 바란다
오늘은 상딸 전화가 안오나 하고 기다리는데 전화가 왓다
8시면 전화가 오는데 9시 전화가 와서 반가웟다
나는 일주일만 소식이 업으면 궁금하다.


2012년 2월 13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사번이 와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갈비 잡채 여러 가지 맛나는 음식을 해 주고 점심 해서 먹고
시댁에 다녀간다고 갓다
내 자손들 다 하나같이 효자들이다
저의들 살기도 어려울거신데 나까지 생각하느라고 고생하는구나
사번 고맙다 부자되고 잘 살어라 고맙다

5윌 8일은 마침 어버이날이었네요.

그래서 자식들이 전화도 드리고 찾아 뵙기도 했나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기장에서 자식들을 호명하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자식들이 많으니 태어난 대로 번호를 붙여 부르실 때가 많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사 번입니다.

원래대로 라면 1번부터 8번까지 공평하게 번호를 불러주셨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번호에서 열외 된 자식이 몇 명 있습니다.
첫째 딸은 1번이라 불러야 할 텐데 그렇게 부르지 않고 상딸이라 부르며 첫째 딸로서의 위상을 존중해 주십니다. 어머니에게 큰딸은 이름 그대로 높여줄 대상이며 마음을 기댈 자식이고 자랑스럽기도 한 상 딸인 것입니다.

그다음 또 열외가 두 아들입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절대 번호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그 둘은 귀한 남아 자손이니 번호를 붙이지 않습니다.
남아 선호 사상의 전형이고 남녀 차별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리 부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남편을 하늘이라 여기며 살았던 세대에게 아들들은 그 하늘과 똑같은 위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번호를 부여받은 자식은 둘째 딸부터 막내까지 다섯 명의 딸 들 뿐입니다.
2번부터 6번까지. 어라? 근데 막내딸도 6번이라고 부르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엄마 나이 마흔둘에 늦둥이로 태어나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막내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막둥이 딸내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이뻐하셨습니다. 언제나 가슴에 맺히는 막내딸이었을 것이기에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막내는 언제나 막내였지 6번이 아니었습니다.

번호를 부여받는다는 것. 어찌 생각하면 인격을 제거하고 존재가 부정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엄마의 유머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번호 부르기를 즐겨 따라 했습니다. 2번부터 5번까지의 딸자식들은 어디까지나 엄마에게는 소중한 자식들이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번호 붙은 딸들 중 멀리 사는 누구는 전화를 자주 하고, 가까이 사는 누구는 자주 목욕탕을 모시고 가고,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는 누구는 맛있는 반찬들을 해오고, 애틋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누구는 가끔 얼굴을 보여주어 반갑게 해 드리고요. 이렇게 모두들 자기 나름대로 말년에 혼자 계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제 글이 남녀 차별의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8남매는 이름이 어떻게 불려졌던지 간에 태어날 때부터 아들이건 딸이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압니다.
엄마는 아들을 낳던 딸을 낳던 삼칠일을 지켜 산구완을 받으셨으며 누구나 여지없이 대문에 금줄이 쳐졌고 아들 딸 구별 없이 생일이면 수수팥단지와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교육도 자식들의 역량 껏 할 수 있는 만큼 뒷바라지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추억 하나가 있습니다.
한 겨울에 된통 고뿔이 들려버린 제가 안방 아랫목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였습니다. 안 마당에서는 언니 동생들이 재미나게 노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너무 아프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안방의 뒷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오셔서 삶은 계란 깐 것을 두 개를 먹여 주셨습니다.


형제들이 많으니 모두에게 계란을 먹일 수는 없고 아픈 자식은 뭐라도 영양가 있는 것을 먹여 돌봐야겠으니 다른 자식들 몰래 뒷문으로 오셔서 계란을 먹여주신 것이지요. 사랑이란 이런 작은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임을 그때 엄마를 통해 배웠습니다.

엄마는 아마 우리 모든 자식들에게 이렇게 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르는 이름으로 차별받으며 자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90세가 넘으시고 병세가 깊어지셔서 말씀도 못하 실 때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제가 몇 번이에요? 엄마는 말없이 마르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네 개를 펴셨습니다.
그때 속울음을 울었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