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여섯 권의 일기장

by 송담

13. 꿈이 안 조안는데 조심해야지


2011년 3월 18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은 해미성으로 가서 국악을 불럿다

그러나 추웟섯다

지갑도 안 가지고 가서 점심 못 먹엇다

시장하니까 기분 안 좋앗다

정신 차려서 지갑은 꼭 가지고 다녀야지


2011년 4월 16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도 무슨 일 하고 보낼거나

꿈이 안 조안는데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하엿더니

차표 한 장 이져버렷다

내가 그런 일 업엇는데

그까짓게 뭐라고 서운하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앗다

이제는 그런 일 업어야지


2011년 4월 30일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

오늘 부락에서 소풍 간다는데 잘 갓다 와야지

부여로 가서 여러 가지 보고 점심 식사하고

공주 마곡사 올라가서 부처님에게 절하고

수덕사 가서 산채 저녁 먹고

집에 와서 문 안 열어져 순중이네서 자고 왓다



엄마는 봄을 맞아 여전히 바쁘게 여기저기 문화센타에도 다니시고 동네 사람들과 소풍도 가서 구경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하십니다.

엄마의 일기는 변함없이 아침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데주세요’라는 기원으로 하루를 시작하십니다. 8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선물임을 믿는 겸손한 마음이며 소박한 기도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기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운이 없는 날도 있었나 봅니다.

마음을 정갈하고 꼿꼿하게 세우려 하지만 몸은 예전과 같지 않으신 것입니다.


3월 18일엔 날도 추웠는데 지갑까지 가지고 가지 않아 점심을 못 먹어 시장해서 기분이 안 좋으셨답니다. 국악을 부르느라 힘도 드셨을 텐데 점심도 못 하셨으니 얼마나 지치고 힘이 빠졌을까요. 게다가 3월 중순인데 날이 쌀쌀하니 마음은 더 안 좋으셨듯 합니다. 배고픔과 추위를 겪은 엄마는 다음부터는 꼭 지갑을 챙기시리라 다짐하십니다.

아마도 단순히 춥고 배고픈 것만 속상한 것이 아니라 내 소지품 하나 잘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이 먼저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음 단속을 하시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인네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총기가 좋으신 엄마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듯이 자꾸 실수를 하십니다.

4월 16일에는 안 좋은 꿈을 꾸어서 조심해야지 하고 미리 다짐했는데도 끝내 차표 한 장을 잃어버리셨답니다.

내가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씀에 그 상실감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픕니다.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내 소지품 작은 것 하나라도 챙기지 못했다는 현실에 대해 잃어버린 차표 한 장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그까짓 게 뭐라고 서운하다’는 말씀은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점점 무뎌져 가는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자책과 자괴감일 것입니다.


당장 차표를 한 장 잃어버리고 엄마는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요. 가방을 칸칸이 뒤져보고 호주머니를 여기저기 찾아보셨을 겁니다. 버스의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겠지요.

평생 야무지고 실수가 없었던 삶이었는데 그런 자부심이 무너지는 상황이 되신 겁니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서 10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으셨던 분인데 차표 한 장의 분실은 마음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으셨을 겁니다. 3월에도 지갑을 두고 가서 곤란을 겪으셨었는데요, 이번에는 집에 돌아 올 차표 한 장을 연이어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실수가 이어지자 어머니는 굳게 다심을 하십니다. ‘이제는 그런 일 없어야지’라고 그 다심은 점점 헐거워지고 희미해지는 노년의 기억력과 행동에 대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에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차표 한 장의 일기입니다.


4월 30일에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부락 사람들과 소풍을 가서 부여도 가고 공주 마곡사도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수덕사 가서 맛있는 산채 비빔밥도 드셨는데 늦은 저녁 집에 와서 보니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열쇠를 두고 가셨던 것일까요, 아니면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잃어버리셨던 것일까요.

그 밤에 얼마나 막막하고 당황 스려우셨을지 가슴이 아려오기만 합니다.

팔십 넘은 노인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연이은 이런 실수는 엄마의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했을까요. 돌아갈 보금자리의 문이 열리지 않는 황당함 앞에서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셨을지요. 결국 현관문을 열지 못하고 이웃집 순중이네 가서 잠을 잤다고 적으셨습니다. 집의 문을 열지 못하고 이웃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상황이 일어났다니 기가 막힙니다.

아마도 다음 날 가까이 사는 둘째 딸에게 전화해서 현관문을 열어 달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일기들을 읽으며 점점 나이 들어가며 일상이 힘들어지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고 보니 속이 상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음을 다지십니다.

‘정신 차려서 다녀야지’, ‘다시는 그런 일 없어야지’ 하며 엄마의 삶에 스며들어오는 나이의 검은 그림자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일기를 계속 함께 읽어나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