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보슬비에
길 건너 지렁이는
집을 옮기고
쥐를 쫓던 뱀은
아궁이를 통해
굴뚝을 빠져나와
뱀을 본 고양이는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는데
어디서 괭이의 노예들은
지렁이의 신혼집을 마구 허물고
황금의 노예들은
고양이집 뿌리를
흔드는구나...
시에 취한 광인(狂人)은
꼭두새벽 문을 박차
세상 향해 걸쭉한 일갈을 퍼붓는데
노예들아 등을 펴라!
너희 굳은 피를 저 태양이
녹여줄 터이니
십자가의 창녀들아,
어찌하여 너희들은
몸도 모자라 영혼까지
팔려하느냐!
저주에 힘입은 지렁이는
마른땅에 새집을 마련하고
굶주린 뱀은
쥐굴 앞을 기웃거리는데
소심한 아이는
스승의 거짓말에
또 한 번 망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