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의 포르코는 미야자키의 분신인가?

[영화로 생각하기]

by 너울

에디터: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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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전시 군수품 납부의 주역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전쟁으로 배를 불렸다는 죄책감, 그러면서도 전투기,

항공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버리는 자신.

그 간극에 느껴지는 부조리한 감정.

주인공 "마코토"를 이루는 모든 요소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어릴 적을 표상한다고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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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미야자키가 진작 자전적인 필름을 제작했다고 생각한다.

1992년, <붉은 돼지>가 그 주인공이다.

익히 알고 있던 영화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본 <붉은 돼지>는 내게 시시한 영웅신화였다.

인간의 몸에 돼지의 머리를 단 주인공이, 따분한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들이 좋아할 것 같은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감상하지 않았던 지브리 작품을 찾게 되었고,

이제야 <붉은 돼지>를 어른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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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를 치는 듯한 배경 소개 장면은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비행정 시대에 지중해를 무대로 하여 명예와 여인과 돈을 걸고

하늘의 해적과 싸워 '붉은 돼지'라고 일컬어진 한 마리의 돼지의 이야기다."


똑닮은 외모와 취향에 깃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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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비밀 아지트에서 쉬고 있는

포르코 로소(Porco Rosso)를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사실은 인물의 외관을 보자마자 "아, 미야자키 하야오다."라고 생각했다.

큰 입에 큰 치아, 틈만 나면 담배를 꺼내 무는 골초!

그림에는 당연히 작가의 외모가 반영된다고 하지만

특유의 씁쓸한 유머까지도 미야 감독의 그것이다.

어른에게는 쌀쌀맞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상냥한 성격,

세속적인 욕망으로 썩어빠진 세상을 비난하면서

여전히 마음속엔 희망과 낭만을 품고 산다는 것도

감독의 신조와 일치한다.


반전주의자이면서 군수품인 비행기를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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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코믹박스>와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전 <모델 그래픽스> 같은 잡지에

시시한 비행기나 탱크 얘기를 쓸 때 제일 행복합니다."

그는 그 유려한 곡선과 내가 이해하긴 힘든 미학에 반해

여러 작품에 자신의 취향을 녹였다.

<바람이 분다>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그 대표작이다.

전우들의 죽음 뒤 공군을 나오면서도

여전히 비행기를 사랑하는 포르코 로소와 감독의 취향은 겹쳐 보인다.


바라는 동시에 비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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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는 "애니메이션은 저주받은 꿈"이라 칭하며

인류의 모든 꿈은 저주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독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했다.

사실 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푸른 하늘을 활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애니메이터가 될 운명이었을 미야자키지만,

포르코를 향한 질투와 은근한 선망이 능글맞고 마초적인

인물로 <붉은 돼지>에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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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년의 남성들이 바라는 강인한 남성상이면서

머리가 돼지인 캐릭터는 상당히 모순적인 설정이다.

사람이 서로를 볼 때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머리라는 것은

그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는다.

소설 <동물농장>의 돼지만 봐도 그러하다.

당연히 풍자적인 의도가 얽혀 있는 인물이고,

포르코 로소를 부러워하면서도 비꼬고 있는 미야자키의

복합적인 시선이 나타나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32년 후 포르코 로소는 인간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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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가 개봉한 지 무려 32년이 지났다.

32년 전, 포르코의 얼굴이 잠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암시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을 뒤로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저주 받은 꿈이

포르코를 돼지로 만드는 저주에 걸리게 한 걸까.

감독도 저주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진 않고 있다.

감독의 세계관에서 모든 것은 그저

'순리대로 되는 것', '원래 그런 법'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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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세상에 묻는 입장이 된 미야자키가

인간과 돼지의 모습을 왔다 갔다 하며

얼마나 많은 저주에 시달렸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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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 되면서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라고 주장하는 미야자키 감독.

83세의 포르코 로소가 지브리라는

비행기를 또 이륙시킬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 엔진이 고장 날 때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부품으로

하늘을 날고 있을 미야자키 하야오임이 틀림없다.




모든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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