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찢기는 폴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품게 된 로망이었다.
폴 위에서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다리를 찢는 고난도 동작을 언젠가는 자유롭게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모태 뻣뻣’. 태어나길 막대기처럼, 아니 각목처럼 굳은 몸이었다. 그런 내가 유연성과 근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전신운동, 폴댄스를 시작했을 때 처음 맞닥뜨린 난관 역시 유연성이었다.
폴댄스 수업은 매트 위 워밍업으로 시작한다. 20~30분 남짓한 시간은 단순한 몸풀기가 아니다. 기본 스트레칭에 복근 운동, 요가 동작까지—강사마다, 학원마다 다르지만 워밍업만으로도 영혼이 탈탈 털린다. 허리를 숙여도 발끝에 손이 닿지 않는 나, 앉아 다리를 쭉 뻗고도 발바닥에 손이 닿지 않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하는 ‘이마로 무릎 닿기’ 자세도 유독 멀게 느껴졌다. 나는 늘 매트 위에서 혼자 낑낑대는 사람이었다. 무식하게 힘으로 다리를 한 번에 찢으려 했다가 정말 말도 못 하게 아파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폴댄스 6개월 차가 되어도 다리 일자 찢기는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손발 닿기조차 어려운 몸으로, 폴 위에서 180도로 다리를 찢겠다는 로망. 그 로망을 더 이상 마음속에만 두지 않기로 했다.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흔 넘어 법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을 때처럼 말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목표였지만, 그 쓸모없음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다. 막상 찾아보니 나 같은 사람은 적지 않았다. 다리찢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성인들, 그리고 다리찢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리찢기맛집 #스트레칭맛집# 스플릿맛집 #성인스트레칭 #4주 다리 찢기 완성 #스트레칭전문. 인기 강좌는 대기만 수개월, 평일 저녁과 주말 수업은 늘 만석이었다. 유연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돈과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나는,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다리찢기를 하러 강남으로 향했다.
8월, 4주 동안 주 1회 100분씩. 나는 스스로 찢어짐의 고통을 예약했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던 스트레칭과는 확실히 달랐다. 무작정 벌리고 버티는 방식이 짜증과 통증만 남겼다면, 그곳의 수업은 안전하고 체계적이었다.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가 위험한지. 언제 멈춰야 하고, 언제 더 버텨도 되는지. 적어도 다치지 않게,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가로찢기는 한 번에 오지 않았다. 문제는 짧은 햄스트링이었다. 다리를 벌리기도 전에 허벅지 뒤가 먼저 당겼다. 본격적인 자세에 들어가기도 전에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허벅지 안쪽, 모음근을 깨우는 스트레칭 구령이 떨어지면 다리는 바로 떨리기 시작했고, ‘악—’ 하는 비명이 반사처럼 튀어나왔다. 조금만 더 가면 끊어질 것 같은 감각. 고통은 늘 빠르고 정확했다.
“여기까지.”
몸은 언제나 먼저 선을 그었다. 그 선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앉을 때, 일어날 때, 허리를 숙일 때마다 같은 자리를 다시 잡아당겼다. 통증은 금세 빠지지 않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햄스트링이 문제네요.”
못해서도, 덜 노력해서도 아니었다. 타고난 조건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위로였고, 동시에 절망이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며, 고통이 조금씩 풀려 유연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다렸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견딤으로 버텼다.
굳어버린 골반과 무릎의 뼈, 경직된 근육과 인대를 펴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굳이 다리를 찢고 싶었을까.
햄스트링은 여전히 짧았고, 몸은 매번 같은 자리에서 멈춰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벌어진 것 같다가도 다음 주에는 다시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분명히 하고 왔는데, 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굳어 있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해서 정말 180도가 오긴 할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더 열심히도, 더 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빠지지 않았다. 몸은 늘 솔직했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바로 다쳤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굳었다. 그래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꾸준히. 견딤.
변화는 아주 작게 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숨을 더 참았고, 다음 주에는 바닥과의 간격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줄었다.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차이였다. 사진으로 찍어도 티가 나지 않는 변화였다. 대신 몸은 기억했다. 어제까지는 경계선이던 통증이, 어느 날부터는 견딜 수 있는 영역으로 내려와 있었다. 기분 좋은 통증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이 닿았다.
의식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가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숨을 내쉬었고, 다리는 더 이상 버티지 않고 풀렸다. 180도 가로찢기. 드디어 배꼽이 바닥에 닿았다. 환호도, 감격도 없었다.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도 못한 채, 금세 다시 접고 일어났다.
그제야 알았다.
꾸준함은 성취의 순간보다, 그 과정에서 몸에 남는 태도라는 걸. 포기하지 않는 법, 급하게 굴지 않는 법, 오늘 안 되면 내일 다시 해도 괜찮다는 감각. 인생에서 나를 여러 번 멈춰 세웠던 건 재능 부족이 아니라, 성급함이었다는 걸.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이끌고 강남 한복판 빌딩 숲을 걸을 때 나도 모르게 혼자 씨익 웃었다.
폴 위에서 배운 건 다리찢기가 아니었다.
다리찢기조금씩 가도 된다는 것, 매번 잘하지 않아도 계속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절하며 함께 갈 수 있는 감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생애 첫 다리찢기 성공 이후에도 나는 바디 아티스트 특강을 듣고 유연성 전문가 레슨을 받으며 햄스트링&장요, 흉추 유연성 운동을 이어갔다.
폴댄스는 잘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운동이다. 한 동작씩 배워가며 나만의 속도로 몸에 집중하는 시간. 매 수업 끝에 완벽한 동작을 해내지 못하더라도, 한 줌의 성취감과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나만의 서사가 된다.
그래서 폴 위에서 반짝이는 것은 근육도, 유연성도 아니다.
뻣뻣한 몸으로도 끝내 멈추지 않는 나다.
견딤의 시간을 잘 보낸 나다.
다리찢기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