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는 부상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내게 남긴 것은 멍과 굳은살만은 아니다.
마흔에 만난 폴 앞에서,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감각 하나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말하는 법, 그리고 울어도 되는 몸이 되는 법이었다.
폴은 멍과 근육통에서 시작한다. 미끄러운 봉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맨살의 마찰력을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노출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전제다. 폴댄스의 기본이 되는 폴 잡는 방법(그립)을 배우는 순간부터 살갗은 봉에 쓸려 붉게 달아오르고, 금세 멍이 든다. 발등과 오금, 무릎과 정강이, 허벅지와 겨드랑이까지—시퍼런 멍으로 온몸이 성한 날이 없다.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마다 평소 쓰지 않던 연한 살과 깊은 근육이 폴에 닿는다. 그날의 몸에는 어김없이 흔적이 남는다. 모르는 사람들은 폭행의 상흔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다음은 멀미와 어지러움이다. 폴을 잡고 회전하는 동작이 반복되면 중심감각은 쉽게 무너진다. 특히 빠른 스핀에서는 멀미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공복이거나 과식했을 때, 혹은 과음 후에는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몸은 아직 공중에 있는데, 의식은 먼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굳은살, 살까짐, 물집을 달고 사는 나. 중력을 거스르는 고통의 반복이라 지루할 틈 없는 폴.@찐인구
세 번째 고통은 손까짐과 굳은살이다. 손바닥은 까지고 피가 나며, 새살이 돋기 전까지 붕대와 반창고를 붙인 채 폴을 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바닥에 굳은살이 자리를 잡는다.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몸은 고통을 밀어내는 대신,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먼저 배운다.
신체적 고통 다음에는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압박이 따라온다. 폴 타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영원한 숙제다. 경력이 쌓여도 고난도의 동작 앞에서는 여전히 겁이 난다. 욕심과 의욕이 앞서 무리한 시도를 하다 낙상이나 골절을 겪고 나면, 한동안 폴 자체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다리와 손목, 팔을 가리지 않는 골절, 허벅지 뒤쪽 근육인 햄스트링(hamstring) 파열, 갈비뼈와 허리, 어깨 부상까지—부상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폴 앞에 선다.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고통을 이미 알고서도 말이다.
멍들고, 피나고, 보기 싫은 굳은살에, 통증과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폴을 탈까. 폴에 매달리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손과 팔에 힘이 생기면서 원하는 동작이 ‘짠’하고 되는 순간의 성취감은 중독에 가깝다. 또 기본적으로 팔로 봉을 잡고 매달리기가 기본인 운동이라 전신 근력과 코어가 생긴다. 특히 나는 전완근, 광배근 부자가 됐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1년에 딱 한번 찾아오는 산타할아버지조차 울면 선물을 못 받는다고 협박했다. 열두 해의 공교육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등은 기뻐서 울 수 있어도, 꼴찌는 울 자격조차 없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반드시 이래야만 해’라는 당위적 요구에 떠밀려 바쁘게 살다 보니, 울어야 할 순간에 제때 울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야’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삶의 연속이었다. 아프면 참았고, 눈물이 나면 속으로 삼켰다. 좋다, 나쁘다 말하지 말 것. 감정은 중립기어에 둘 것. 곧 지나간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것. 찍소리 ‘안’ 내는 것이 시간을 버는 법이고, 길게 보면 가장 무난한 생존 방식이라는 공식 속에서 나는 별 탈 없이 살아왔다.
딸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직장인으로—내 이름이 아니라 맡은 역할에 맞게 하루하루 버텨야 했던 날들이 적지 않았다. 버티는 삶을 사느라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지친다, 지겹다, 아프다, 힘들다는 말은 너무 오래 책임져 온 마음 앞에서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외적인 결과와 경쟁력, 우위를 증명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어온 시간 앞에서 나는 근면성실과 책임감, 그리고 자책과 채찍에 익숙해졌다. 쉽고 편하게 사는 게 나쁜 인생도 아니고, 성실하고 힘들게 산다고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주 작은 살 쓸림에도 크게 ‘아야—’ 하고 소리를 냈다. 손이 까지고 살이 찢어져 피가 나면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폴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마치 곧 죽을 것처럼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괜찮냐고, 안 아프냐고 묻는 원장님과 폴메이트들의 걱정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붕 뜨게 했다. 내가 느끼는 아픔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어도 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그곳이 나는 마냥 좋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아이였다. 부모에게 인형이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써본 적도, 투정을 부려본 적도, 어리광이나 응석을 부려본 적도 없다. 엄마가 황혼육아를 하며 “손녀에 비하면 우리 딸은 참 수월하게 키웠지”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이 유난히 무겁게 다가왔다. 엄마는 나를 쉽게 키웠고, 나는 쉽게 울지 못하는 아이로 자랐다.
내 몸무게를 온전히 혼자 짊어지고 봉에 매달린 시간만큼,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웃길 때 웃고, 아플 때 울고, 쓰라리면 짜증 내고 엄살을 부리는 사람. 감정 뒤에 표정을 숨기고 뒤늦게 우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를 먼저 걱정하며 “괜찮다”라고 말하느라 분주한,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내가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우는 나.
폴에서 떨어져 아파서 울고,
폴에서 박자를 놓쳐 분해서 울고,
폴에서 순서를 까먹어 쪽팔려서 울고,
폴에서 동작이 안 예뻐 속상해서 울고,
폴에서 마지막 착지가 실패해 분해서 울고,
폴에서 어려운 동작을 기어코 해내 벅차서 운다.
햇수로 5년, 폴을 타며 몸은 눈에 띄게 단단해졌다.
그보다 더 크게, 울 줄 아는 어른이 되면서 마음의 근육이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른도, 얼마든지 울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