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겨울⑧ 말 없는 기록의 방식: 폴 프로필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

by 찐인구

오랜 시간 나는 현장에서 기록하는 삶을 살았다.

타인의 이름과 나이, 성별, 그리고 사건의 진위 여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을 하며 ‘사실’과 ‘기록’은 나의 하루였고 전부였다. 정보를 흘려보내지 않고 팩트로 붙잡아 남기는 일,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사실의 무게를 앞세우는 조용한 책임을 무던히 견디며 16년을 일했다. 세상이 지나간 자리에 사라지지 않을 기록 하나를 남기는 것이 내 직업이었고,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한 발짝도 가볍게 디딜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확인과 확인을 거듭할수록 문장은 무거워졌고, 그 무게는 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출퇴근 왕복 100킬로미터, 새벽 출근과 반복되는 편집회의, 보고와 지시, 확인과 전달로 이어지는 빈틈없는 하루는 처절할 만큼 철저해야 했기에 쉽게 편해질 수 없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육체적 고됨과는 다른 결의 외로움이었다.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소진되고 마침내 소멸되어 갔다.

점점 더 가늘어지고, 얇아지고, 닳아갔다.




마멸의 끝에서 나는 스스로 빠져나왔다.

이제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지치고 다친 나를 달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폴을 잡았다.

기록하던 손이 처음으로 매달린 것은 글자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


기자로 살며 수없이 많은 타인의 얼굴과 삶을 기록해 왔지만 정작 나 자신은 한 번도 기록한 적이 없었다. 폴댄스를 시작한 뒤 2022년 5월과 11월, 그리고 2024년 4월, 세 차례의 폴 프로필 촬영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나를 기록했다. 사십 평생 처음이었다.


그 기록은 완벽한 순간을 남기는 일이 아니었다. 버티는 몸과 흔들리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두는 일이었다. 그날의 사진들은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리고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기사는 사실이자 증거였다. 사건을 입증하고 상황을 설명하며 사실을 대신 말해주는 언어였다. 감정을 용납되지 않았다. 사진 역시 흔들리면 안 됐고, 감정이 개입되면 더더욱 안 됐다.



KakaoTalk_20260208_234524420.jpg 이제 나는 타인의 삶 대신 나를 기록한다. 흔들려도, 아파도, 닳아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찐인구


폴 프로필 사진은 정반대였다. 그것은 증명이 아니라 고백이었고, 설명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다.

각도와 빛 아래 놓인 몸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버텨온 시간의 기록이었다. 흔들림은 숨기지 않아도 되었고 아픔과 흉터는 지워낼 필요가 없었다.


기사와 사진이 사실을 대신 말하는 언어라면 폴 프로필 사진은 말없이 나를 드러내는 몸의 문장이었다. 나는 그 사진들 앞에서 처음으로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가 살아오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폴 프로필 촬영을 앞두고 동작을 연습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까지 모든 과정을 오롯이 나를 위해 준비했다. 촬영 당일,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은 채 극한의 절제 끝에 마무리한 프로필 촬영의 목적은 잘 나온 사진을 얻는 데 있지 않았다. 기록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데 있었다.


폴 프로필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몸이 시간을 증언한다. 사진에는 근육의 선보다 더 많은 것이 남는다. 멍과 긴장, 숨이 가쁜 순간, 버텨온 연습의 시간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한 컷은 ‘지금의 나’를 봉인하는 기록이 된다.


또 하나의 매력은 허락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포즈가 아니라 지금의 몸을 그대로 두는 선택. 완벽하지 않아도 찍고, 흔들려도 남긴다. 폴 프로필은 몸을 교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몸을 인정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선의 주인이 바뀐다. 카메라 앞에 서 있지만 대상이 아니다. 각도와 빛, 동작을 선택하는 주체로 선다.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


폴 프로필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버텨온 몸을 보여준다. 말보다 먼저 숨이 닿고, 문장보다 먼저 근육이 반응한다.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기록이다.


나는 한때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나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이 아니라 몸으로, 기사가 아니라 숨으로.


폴 위에 남긴 이 기록들은 내가 얼마나 버텼는지가 아니라, 내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내 삶의 주어가 내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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