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겨울⑨ 폴댄스가 나에게—괜찮아?

by 찐인구

결핍은 내 유년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이상하게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결핍과 나란히 자란 나는 늘 한 발 먼저 어른이 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일찍부터 괜찮은 아이가 되어야 했다. 울어도 오래 울지 않고, 서운해도 티 내지 않는 아이. 괜찮다는 말은 편했고, 곧 습관이 되었다. 질문을 닫고, 감정을 접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용했다. 나는 오래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습관은 어른이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을 삼키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설명하지 않는 쪽이 더 안전해졌다. 불안은 이유를 갖지 못한 채 몸에 먼저 도착했고,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는 데 익숙해졌다. 괜찮다는 말은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은 늘 나보다 앞서 나갔고, 나는 매번 조금 늦게 나 자신을 따라갔다.




폴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 질서가 흔들렸다. 폴 앞에서는 괜찮은 척이 잘 통하지 않았다. 차가운 폴을 잡으면 미끄러졌고, 오르면 떨어졌고, 버티면 통증이 바로 몸으로 돌아왔다. 아픔은 숨길 수 없었고,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단순함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다. 더 잘하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2025년 7월 팅커벨 폴 스튜디오 양아영 원장님의 전문가 수업@찐인구

중급 기초의 대표 동작으로 불리는 ‘에어인벌트(airinvert)’를 처음 시도하던 날, 폴 잡은 손에서 힘이 먼저 빠졌다.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몸을 앞질렀고, 복부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발이 공중에서 허공을 더듬는 동안 나는 코어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떨어지기 직전,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습관처럼 괜찮아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무거운 몸은 올라가지 않았다. 폴은 설득되지 않았다.


‘박스스플릿(boxsplit)’을 연습할 때는 반대로 과하게 버텼다. 허벅지는 타들어 가고, 사타구니가 찢어질 듯 아파도 자세를 풀지 않았다. 내려와도 된다는 신호를 무시한 채 ‘조금만 더’를 반복했다. 그렇게 끝내 동작은 해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며칠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괜찮다는 말이 언제나 나를 보호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느 날 연습 도중, 나는 폴 아래에 주저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근육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풀려버린 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를 향해 묻듯, 아니 정확히는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괜찮아?”


그 질문은 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있어도 된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너 괜찮지 않잖아….”


그 이후로 나는 아프고 힘들고 다친 날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의 얼굴을 먼저 내밀며 살아왔다. 그 얼굴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렸다. 폴을 타면서 나는 그 가면을 벗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프고 흔들리는 몸 그대로의 나로 오늘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아직도 결핍과 함께 산다. 불안은 여전히 예고 없이 찾아오고, 괜찮다는 말은 습관처럼 입가에 맴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말을 곧바로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괜찮은지, 아니면 그냥 버티고 있는 것인지. 나는 오늘도 괜찮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살기 위해 폴을 탄다.




나는 요즘 성치 않았던 어른 시절 나에게 가진 시간과 돈 대부분을 펑펑 바친다. 그만한 안식이 없다. 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온전히 내가 나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마흔일곱 살의 내가 일곱 살의 나, 열일곱 살의 나, 스물일곱 살의 나, 서른일곱 살의 나를 만나 가면을 훌훌 벗어던지고 세상에 둘도 없는 짝꿍이 되어 굳이 멀리서 어렵게 행복을 길어올 필요 없이 폴 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괜찮은 시간이다.


요즘 나는 성치 않았던 어른 시절의 나에게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만한 안식이 없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나 자신에게 쓰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감각에 몰두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마흔일곱의 내가 일곱의 나, 열일곱의 나, 스물일곱의 나, 서른일곱의 나를 만나 가면을 벗는다.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짝꿍이 된다. 굳이 멀리서 어렵게 행복을 길어 올리지 않아도 된다. 폴을 타는 이 시간은,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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