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여름⑥ 잘 참는 것!

갑이 갑으로 살지 못한 이유

by 찐인구

갑이 갑으로 살지 못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갑은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명산리 산골짜기에서 3남 2녀 막내딸로 태어났다. 막내딸이라고 누릴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태어나보니 가난했고 크다 보니 아버지가 치매가 왔고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했다. 뻔한 수순이었다.


수저, 이불, 장롱 필요 없이 몸만 가면 되는 옆 동네 곡성군 삼기면 괴소리에 사는 부잣집 막내아들을 읍내 청자다방에서 처음 만난 후 바로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갑의 의견, 선택, 결정은 한 스푼도 가미되지 않았다. 순전히 절대적 빈곤이 스무 살 갑에게 새색시 옷을 입혀주었다. 친정까지는 20㎞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반겨주는 이 없는 가난한 친정 나들이 한 번 다녀오지 못했다. 선 자리에서 술 한 모금도 못 마시다던 듬직한 남자는 어디 가고 없고 마누라보다 막걸리 통을 옆에 끼고 잠드는 날이 많은 부잣집 막내아들이 갑의 남편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절 모든 사람들의 삶은 척박하고 힘들고 거칠었다. 모두가 배고팠고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 갑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의 손은 새까맣게 탄 속내를 닮았다. 그래서 갑은 한여름에도 반팔 대신 긴팔을 입고 다닌다. 까만 손이 콤플렉스인 갑은 평생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궂은 일로 1남 1녀를 낳아 키우며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지켜온 꽃 같은 자식들이 세상 전부였다.


갑의 세상에는 젊음도 기회도 없었다. 그저 아들은 선생으로, 딸은 간호사로 키우고 싶은 소박한 꿈을 키우느라 곱디고운 손은 까만 숯댕이가 되었다. 갑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할 때 더 바쁘게, 힘들게 몸을 혹사시켰다. 값의 삶에서 고통은 그 형태가 다를 뿐 늘 가까이에 있었다.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져 안타깝게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크기가 더 커지고 말았다.


따뜻했던 어느 봄날 주말, 나는 가든 앞 큰 벚꽃나무 아래에서 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벚꽃 잎이 봄바람에 꽃비가 되어 떨어질 때 갑은 불판을 가느라 하루 종일 종종걸음 치느라 바빴다. 나는 벚꽃 잎을 잡으러 이리저리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흩날리는 하얀 벚꽃 잎 속으로 달려들어 꽃잎을 잡으려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꽃 잎이 내 손바닥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하길 2~3시간 동안 잡은 꽃잎을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었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간절히.


‘고기 불판이 너무 뜨겁지 않게 해 주세요.’


갑은 가난 생존자가 되어 올해 칠순이 됐다. ‘나이는 어쩌다 먹는 건지, 그냥 먹는 건지 세월이 참 빠르네.’라던 갑은 요즘도 불 앞에서 지지고 볶고 끓이고 다용도실과 냉장고 문을 여닫느라 바쁘다.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싸줘, 더운데 뭘 이리 많이 싸서 보내, 제발 반찬통 넘치지 않게 담아야지, 다 못 먹는다고 했잖아.”


참지 못하고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쏟아냈다. 갑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손이 무겁도록 바리바리 싸서 보내기에 안달이 났다. 평생을 남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해내느라, 남편과 자식 삼시세끼 해내느라 불 앞에서 잠시도 떠날 일이 없었던 그 고단한 삶이 지겹지도 않은가. 갑은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며 음식 보따리를 차에 실어주는 것까지 하고 어서 출발하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6-엄마의 반찬1.jpg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다는 갑이 공급해 주는 음식으로 차린 식단들. @찐인구


나는 그게 다 갑의 전부인 줄 몰랐다.


봄에만 나는 냉이를 잊지 않고 무쳐서 식탁에 올려주던 거, 여름이면 열무김치를 담가 냉장고에 꼬박꼬박 챙겨주던 거, 제철되면 복숭아며 수박이며 제일 단 부분을 잘라 입에 먹여주던 거, 아침저녁으로 밥 거르지 말라는 전화가 전부 갑의 전부였다는 것을 나만 몰랐다.


갑은 요즘도 도가니탕, 수육, 두루치기, 오이김치, 오이지무침, 콩자반, 멸치조림, 콩물 등 반찬과 참외, 살구 등 여전히 때를 잊지 않는 제철 과일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퇴근길 집에 들러 반찬 챙겨가라는 전화가 귀찮아 “오늘 야근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갑의 마음을 후벼 파기 바빴다. 갑과 나는 참 다른 방식으로 바쁘게 살았다. 그마저도 나는 제때 챙겨 먹지 못해 갑이 수시로 챙겨 보내는 반찬과 과일이 마냥 상하도록 뒀다. 못된 년.


갑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이다.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해와 오해로 점철된 갑과 나는 참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허나, 아직도 멀고 낯선 존재다. 벅차다고 해야 할까, 버겁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무겁다.


무던히도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갑의 힘듦을 먹고 자란 탓에 맛있다고, 더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없는 살림에 정이 많아 마음 주는 사람한테는 입에 있는 것도 빼줄 판이니까. 스무 살부터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사람이 갑이기 때문이다.


창밖은 여름, 그 계절과 시절에만 나는 것들로 나를 넘치게 채워주던 갑이 밉다. 그리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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