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호구 – 슈베
슈베는 바둑을 둘 줄 모른다.
그는 바둑판에 앉아 본 적도, ‘호구(虎口)’가 본래 바둑 용어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런데도 슈베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의미의 ‘호구’다. 그것도 호구 중의 호구.
우선 슈베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
슈베도 엄연히 인격이 있고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밀한 사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이 있을 터이니.
슈베의 유구하고도 화려한 ‘호구의 역사’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는 타인과 신뢰를 쌓는 속도가 빨랐다. 환경, 문화, 기호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금세 친구로 여기고 가족처럼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하는 과정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평균치의 삐걱거림이 없었다. 슈베의 인간관은 촘촘한 문화적 프로토콜을 구사해야 하는 고도의 사회적 활동이 존재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사적인 영역으로 훅 들어오는 사람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고향이 같으면 형, 누나, 사돈의 팔촌까지 챙겼고, 자기 일처럼 나섰다. 남들보다 빠르게 신뢰했고, 유별나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문제는, 그렇게 연 마음을 닫는 데 서툴렀다는 데 있다.
슈베는 감정 표현에도 서툴렀다.
50년대 태어난 감정 표현 불능증 세대여서가 아니라, 애초에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좋다’, ‘싫다’, ‘기쁘다’, ‘화난다’, ‘슬프다’는 말을 그는 그저 삼켰다. 개성과 정체성, 널뛰는 감정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유순한 막내아들로, 우유부단한 남편으로, 무뚝뚝한 아버지로 살아왔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가 불편해하고 혹여 자신을 나쁘게 판단하고 떠날까봐 모든 감정을 조용히 자신 안으로 남겨두고 축적했다. 그렇게 삼킨 감정은 술을 마셔야만 입 밖으로 나왔다. 술이 없으면 말이 없고, 말이 없으면 오해가 쌓였고, 오해가 낳은 불편한 상황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슈베는 술과 친해지는 동안 성실과 가족들로부터 멀어졌다. 반면 타인에게는 호인, 모든 이에게 후했다. 중국집 짜장면 그릇 하나도 깨끗하게 씻어 문 앞에 내놓고, 급전이 필요하다는 사촌에게 본인 명의로 된 땅을 농협에 담보로 잡혀 큰돈을 내주었다. 돈 빌려주고 좋은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도 슈베는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보험을 4개나 중복으로 가입하고, 5천 만 원짜리 이동식 컨테이너 하우스를 사서 귀농하겠고 우기고, 땅문서도 남의 손에 넘겨주던 슈베.
어디 돈 사고 뿐이겠는가.
자전거 타다 사고 나서 양쪽 어깨 철심 박고, 막걸리 마시고 오다 1톤 트럭에 치여 저승사자한테 잡혀갈 뻔했던 일, 인슐린제를 맞는 당뇨 환자인데 가족 몰래 사탕, 과자, 떡볶이 먹다 걸려 대학병원에 2주 동안 강제 입원 치료했던 일 등 병원을 말 그대로 ‘제집 드나들 듯’ 했다.
그는 끝까지 예스맨이었다. 거절하지 못했고, 계산 먼저 했고, 야채 파는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파 시든 채소를 샀다. 슈베는 호구와 호인 사이에서 바빴다. 가족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는 늘 자기 방식대로, 곧 호구의 방식으로 살았다.
타인에게 화 한번 낸 적 없던 슈베 옆에서 나는 참 많은 분노의 밥을 먹었다.
기껏해야 “그럴 수도 있지”, “어디 도박 안 하고, 여자 안 하면 다행이지” 같은 말로 위로받는 슈베의 사고는, 나를 아주 얇고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다. 슈베로 인한 크고 작은 분노가 비켜가는 날이 없었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끊이지 않았다. 내 청춘의 한복판에 훅 뛰어들어 뿌리째 뒤흔들어놓고 가기를 반복했다. 이 모든 사건·사고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역시 무의미했다. 그 처리와 책임은 오롯이 내 앞에 떨어졌다. 모든 악역은 내가 도맡아 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결코 주지 않는다고, 신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만 준다고, 웃기는 소리다. 신은 인간이 고통스러워할 때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늦추지 않는다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국가 전복 혐의로 체포돼 오랫동안 추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 좋아하는 책도 읽지 못한 채 강제노동을 하며 평생 빚에 쪼들리며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세계적인 명작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신이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허락했기 때문이라는 문학선생의 말은 옳은 개소리다.
슈베가 호구가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년기, 그는 누군가로부터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슈베는 학교 끝나면 형 따라 꼴 베고,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는 게 미래보다 더 심오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감정을 말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일하고 참는 법부터 배웠다. 그러니 ‘자기 감정에 솔직하라’는 말은 그에게 외계어였다. 그런 언어는 배우지 못한 언어였으니까. 때론 침묵이 그 어떤 것들보다 슈베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됐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인간으로 성장한 슈베가 호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슈베를 원망했다.
하지만 원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어깨에 철심을 박고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술기운에 실수하고도 또 웃는 얼굴로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
참 밉고, 참 귀엽다.
또 자신만의 언어 없이 살았던 슈베가 참 안타까웠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는 존재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바꾸기는 더 어렵다.
올해 희수(喜壽)의 슈베는 바뀌지 않는다. 절대.
대신 몇 년 전부터 슈베의 주변 환경 변화를 꾀하며 가랑비 옷 젖듯 천천히 방법을 바꿔나갔다.
우선, 슈베 명의의 아파트를 엄마 명의로 바꿨다.
그 다음 신용카드를 없앴고, 자전거는 당근마켓에 팔았다.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말라고 협박 아닌 협박 전화를 아침저녁으로 했다.
슈베가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했다.
나는 그의 사고를 막기 위해 감정을 소모하며 감시자가 되었다.
용건은 간단하다.
첫째, 모르는 번호 받지 말 것.
둘째, 보험·핸드폰·대출 문자는 바로 삭제.
셋째, 계산 먼저 하지 말 것.
넷째, 시든 채소 사지 말 것.
다섯째…
(뚜뚜뚜… 통화 종료)
아직 다섯 개나 더 남았는데….
뭐 바쁜 일이 있다고 전화를 끊어.
이런 식으로 빡치게 하면서도 밉지 않은 슈베, 나는 그가 참 좋다.
저녁 7시면 자고, 새벽 4시면 운동하러 나가는 슈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마치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사람.
내가 평생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할 사람.
나의 금쪽이.
슈퍼 베이비, 슈베.
창밖은 여름, 슈베가 또 나 몰래 사고치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