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자를 그만둔 이유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학기 초 담임선생님이 장래희망을 써서 교실 게시판에 붙이자고 했다.
나는 주저 없이 ‘꽃집주인’이라고 적었다. 예쁜 꽃을 좋아했고, 향기 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우고 다시 쓰라 했다.
“선생님, 제 꿈을 왜 지워요?”
선생님은 멋쩍어하며 간호사, 한의사, 변호사, 과학자, 대통령과 같은 세 글자짜리 꿈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꽃사장’이라고 써서 냈다. 그랬더니 다음 날, 내 장래희망란에는 ‘간호사’로 적혀 있었다.
아마 내가 ‘꽃장사’라고 썼더라면 바뀌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건 사회적으로 허락된 ‘현실적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4년 뒤, 나는 꽃 대신 펜을 들었다.
나는 불편한 걸 잘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기독교 재단의 사립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억지로 참여하는 종교행사며, 기쁨을 가장한 헌금 모금, 과도한 모의고사 비용 같은 것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냥 넘기지 못했다. 거리낌 없이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교목실에 끌려가 성경을 베껴 쓰는 벌을 받곤 했다. 운 좋게 도망친 날엔 나도 모르게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절로 감사했던 기억도 있다.
“용감도 병이다.”
“보기와 달리 참, 까다롭고 예민하구나.”
“너는 왜 그렇게 불의를 못 참니?”
“우리 좀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될까.”
담임선생님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나는 그 말들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저 이상하고 불편했다. 웃고 넘길 수 없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했다.
‘나만 그런가?’, ‘나만 불편한가?’ 싶을 정도로.
그 물음들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나는 언론고시생이 되었다.
신문사 최종 면접에서 기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불편한 일을 쓰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왜 기자가 되려 하느냐는 질문에는, 사회적 약자, 정의 실현, 권력 감시라는 말을 세트처럼 줄줄 꺼냈다.
그게 나의 목표였고, 꿈이었다.
내가 쓴 기사로 누군가의 불편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가소롭다.
2004년, 기자 초년병 시절 행복했다.
몸은 고됐지만 기사 쓰는 게 마냥 즐거웠다. 매일 사수한테 깨지고 혼나면서도, 취재수첩을 넘기며 느끼는 손끝의 감각이 좋았다. 펜이 닿는 오른손 셋째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박이던 날은 나 혼자 기념이라도 한 듯 만지작거리곤 했다.
10년 넘도록 ‘열심히’ 살았다.
여자로서도, 기자로서도, 엄마로서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열심히’가 내 삶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내 삶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없으면 게으르거나 미래를 포기한 사람처럼 생각됐다.
‘열심히’가 정답이고, 비밀명기고, 최선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열심히’는 늘 옳은 선택 같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무색무취의 인간, 그저 기사만 찍어내는 기계가 돼 있었다.
기자가 아닌 기계가 일하는 신문사 안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좋은 대학, 괜찮은 집안,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들’. 평균 이하의 삶을 취재할 시간은 점점 줄었다. 사회적 약자, 불평등, 권력 감시—그런 단어들은 원고지 안에서만 존재했고, 나는 기득권에 바짝 붙어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기생하고 있었다.
소수의 가진 자들이 다수의 못 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방법을 잘도 이해하고 있었다.
때론 권력 옆에서 편을 들고, 펜은 미래를 향하면서도 행동은 과거에 머물렀다.
보도자료를 옮기며 커피를 마시는 기자.
광고주와 취재원이 겹치는 순간에도 침묵하는 기자.
의심과 확인보다 편의와 안일을 택하는 기자.
나는 스스로 키운 괴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누가 살라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매일 적에게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비명이 흘렀다.
취재하고 기사 쓰고, 거기다 광고업무까지 하느라 치열하게 열심히 산 날일수록, 와, 오늘 정말 잘 살았어를 외치며 두 다리 쭉 뻗고 잘 잘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날이 쌓여갔다.
더 힘을 냈다간, 더 열심히 살았다간 몸과 마음이 고장 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던 중, 2020년 나름 큰 사학비리를 10개월 넘게 취재하면서 깨달았다.
더 이상 펜이 나를 살리지 못하겠구나. 숨구멍을 찾아 떠나기로 처음으로 마음을 먹었다.
16년 종이밥 먹었는데 좀 아깝긴 하네.
그래, 기자 그만 두면 뭐 할 건데?
네가 꿈꾸는 삶은 어떤 것이지?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아파트 갖는 것, 유명한 작가 되는 것, 현모양처….
정작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게 있긴 한 건지 똑 떨어진 정답을 찾지 못했다.
눈을 뜨기 전부터 슬픔이 밀려와 눈을 뜨기 싫은 상태로 새벽 출근해서 하루 종일 푹 젖은 무거운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취재현장을 다니는 상태에선 숨구멍 찾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려 발버둥 치기.
갑질하는 조직에서 억지로 웃으며 참아내기.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내 마음은 방치하기.
이 숨차고 힘든 허들 그만 넘자.
16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그만뒀다.
202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사표를 냈다.
사회부장은 “너 미쳤어?”라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일주일 후, 12월 31일. 나는 16년의 기자생활을 정리했다.
딱 마흔 살이었다.
창밖은 여름,
인생의 허들을 능숙하게 넘기기엔,
존나게 더운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