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여름⑤ 잘 주는 것!

나는 루저(Loser)다.

by 찐인구

나는 루저(Loser)다.


왜 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있음을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어느 날 문득 불안이 폭발하듯 밀려오면 애써 외면했다. 시간을 들여 나를 들여다보고 내 감정의 실체를 찬찬히 살펴보는 과정을 무시한 채 안 힘든 척, 마지못해 ‘그래, 괜찮아’를 무한반복하며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잘못된 쉼’을 멈추고 ‘제대로 좀 쉬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자연스럽게 혼자서 버텨온 시간이 많았다. 혼자 버티는 시간이 되레 편했다. 속으로는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자, 애써 버티려 하지 말자’라고 되새겨보지만 어느새 가슴팍을 부여잡고 숨죽여 울고 있는 나만 덩그러니 남는 나날이 이어졌다.


어려운 나날이 이어질수록 나는 가족들로부터 멀어졌다. 나의 뜨거움이 그들에게 옮겨 붙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차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닮은 상처는 애처롭기만 했다. 서로를 향한 애달픈 마음만 깊어질 뿐 우리는 서로를 구해줄 수 없었다.


무거운 감정을 품고 살아갈 때, 극심한 불안에 발목이 걸려 넘어졌을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공허함,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엄습할 때면 나는 K와 S를 찾았다.


KakaoTalk_20250706_212325105.jpg 나의 삶에 K와 S는 고스란히 추억이고 청춘이다. 창밖은 뜨거운 여름, K와 S에게 여름 안부를 묻는다.


나와 K, S 우리 셋은 가난했다. 가난 속에는 우리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연출해냄으로써 서로를 구원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드문드문 행복했다. 고교시절 그냥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거나 개성과 끼가 넘치는 학생들도 아니었다. 연극이나 영화로 치면 행인 1, 행인 2, 행인 3였을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엑스트라일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에게는 주연배우였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K는 K-장녀다. K는 살림 밑천으로 강요받지 않았지만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고 취업 후에도 여동생 둘의 학비를 댔다. 시키지 않아도 혼자 남은 엄마를 알아서 케어하고 동생들을 책임지고,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알아서 척척척, 가장처럼 ‘책임감’을 자기의 것인 양 당연하게 껴안고 살았다. 우리 셋 중에 가장 단단한 녀석이다.


S는 초등학교 3년 때부터 알고 지낸 35년 지기 친구다. 1남 3녀 중 막내로 자란 S는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셋 중에 손재주가 가장 뛰어나 음식이면 음식, 그림이면 그림, 못 하는 게 없다. 글씨도 잘 써 야간자율학습시간 S가 건네준 손 편지는 시련과 곤궁함이 덕지덕지 묻어 초라하기 그지없던 나의 10대를 버티게 해 주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S는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동요를 부르는 천사 같은 유치원 교사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타인에 대해선 나 대신 욕을 찰지게 해 주는 매력적인 친구다.


우리 셋은 고등학교 졸업 후 비슷비슷한 노동력을 팔았다. 카페,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가 가장 흔했다. 그것들은 적은 시급에 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노동이었지만 우리는 용돈과 학비를 벌어야 했고 결국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고단한 청춘이었지만 서로의 꿈을 기대며 견뎌냈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지닌 가슴 뛰는 시절이었으므로 그 시절이 마냥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젊음을 즐기며 잘 버텨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신현림 시인의 시, 「나의 싸움」의 한 대목처럼 우리는 망가지지 않기 위해 무턱대고 일을 했다. 가난하고 비루한 20대 한가운데서 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염려할 줄 알았다. 어떤 행운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우리는 각자의 치열한 20대, 30대를 살아냄으로써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았다. 단 돈 몇 만 원 빌려달라는 아쉬운 말 한번 하지 않고 우리는 꿋꿋하게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해 갔다.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고 싶다는 욕망, 큰 무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을 숨긴 채 나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왔다. 완벽한 어른이 되고자 했다. 가족과 K, S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았다. 기자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살면서 끊임없이 내 정체성을 입증할 어떤 다른 증거를 제시하느라 바쁘기만 했다. 타인이 기대하는 나로 살아가는 ‘네가 원하는 나’만 존재할 뿐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허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를 일으켜 세운 건 K와 S였다. 나의 10대, 20대, 30대 그리고 40대를 같이 하고 있는 그녀들은 내 인생의 청춘이다. 나를 증명하기 바빠 지치고 힘들 때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밝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한 움큼씩 소환해 내면 위로가 됐다. K와 S와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왔다. 지금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결국 우정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나는 어설픈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K와 S에게만큼은 잘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제철 과일과 하남빵집 여름시즌 수박식빵, 밑반찬을 사서 퇴근길 S에게 건네주고, 미국에 살고 있는 K 어머니의 생신선물을 챙기고 온수매트를 사서 보내는 등 고작 이뿐이지만 나는 K와 S에게 고스란히 추억이고 청춘이고 싶다.


나는 루저(Loser)다.

현재의 나는 타인과 관계에서 피상적으로만 반응할 뿐이다. 적당한 감정을 적당하게 생각하게 적당하게 행동함으로써 거리는 유지한다. 타인에게 머리와 눈, 귀 그리고 가슴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오직 K와 S에 대해서만 가슴으로 온몸으로 반응하고 응답한다. K와 S는 나를 해치지 않는다.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모자라는 요소라고 한다. 식물이 성장하는 데는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인산, 유황,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 이렇게 10가지 영양소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9가지 영양소가 필요량의 10배, 100배, 1000배가 된다고 해도 하나의 영양소가 부족하면 그 식물을 결국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가 제시한 ‘최소율의 법칙’이다.


K와 S가 바로 내게 ‘최소율의 법칙’이다.


창밖은 여름, K와 S가 보고 싶은 뜨거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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